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

<희망을 주는 책 소개> 경성트로이카

이시대 2013. 1. 18. 16:06

 

 

 

<파업>의 작가 안재성의 글은 상당히 오묘한 뒷 여운을 남긴다.

일제 하 조선사회의 항일운동의 역량은 '상황판단을 잘못하는' 민족주의적 운동가들이 아니라 오롯이 사회주의 혁명을 일으켜 일제를 타도하려 했던 국내파 사회주의자들이었다는 역사적 시각을 여실히 드러낸다. 그러나 이러한 시각은 그동안 정당성을 잃었던 주장에 불과한 것이었다.


분단 후 갈곳이 없어 대다수 북행을 결심한 남한 내 주요 사회주의자 그룹은 김일성이 북쪽을 장악하자 최대 정적으로 떠오르게 된다. 이는 상당한 권력투쟁의 소용돌이를 내재한 것이며, 결국 권력투쟁에서 승리한 만주빨치산파 김일성 지도부는 남로당 주요인사를 '미제의 고용간첩' 으로 숙청하였다. 그 이후 남로당의 역사적 지위는 형편없이 떨어져버렸다. 북한은 물론이요. 남한 정계에서도 가뜩이나 성가신 존재였던 '조선공산당' 운동을 송뚜리채 지워버리던가, 아니면 반역의 역사로 규정지어버린 것이다.

작가 안재성은 남한에서 활동한 사회주의 활동가들의 정당성에 대해 말하고 있다. 비록 전쟁 이후 남로당 운동은 무엇이었나 이야기하지는 않지만(그 부분을 읽기 위해서는 같은 작가가 쓴 <박헌영 평전>을 읽어볼 필요가 있다.) 조선 혁명의 주류로서 조선공산당 운동이 있었고 그 핵심으로는 '경성트로이카' 라는 순수 국내파 조직이 있었다는 사실을 강변한다.


경성트로이카를 책임지고 이끈 이재유는 흥미로운 대상이다. 변절과는 거리가 멀었던 이 조선인 사회주의자는 오로지 혁명을 통해서만 조선을 해방시키고 무산자들이 권력을 쟁취할 수 있다고 보았다. 혁명을 조직할 전위로서 만든 경성트로이카의 핵심들은 모두 우리가 알다시피 조선공산당사에서 중요한 인물이다. 천재조직가 김삼룡과 우직한 이현상들은 모두 조선전체를 대표할 만한 '선수'로서 성장하게 된다.

안재성은 비단 경성트로이카를 왠지 무시무시해보이는 분위기를 전달하는 조직으로서 설명하려 들지 않는다. 문학적 감수성과 혁명의 순결과 순수함을 전달하는데 상당한 투자를 하고 있다. 여성혁명가들의 근대적 인식과 운동을 위한 희생은 오히려 가슴 찐한 여운을 남긴다. 마지막에는 비록 혁명이 달성된 현실사회주의 국가 인 북한을 인정하지는 않지만 초기 남, 북이 통일되어 있던 공산주의 운동의 순수함을 전달하고 싶어 한다.


딱 거기까지, 책을 읽는 나 역시 딱 거기까지 인식하려고 한다. 너무 많은 정치적 판단을 개입하게 된다면 이 책은 소설로서 읽기가 어렵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