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절하게 독서하기> 광기와 우연의 역사
광기와 우연의 역사(슈테판 츠바이크, 휴머니스트, 2004)
“역사발전의 주체에 대해 고민해본다.”
우리는 종종 한 순간의 판단과 선택이 자신의 모든 것을 뒤바꾸고 심지어 사회를 변화시키는 순간들을 목격한다. 그러한 판단은 짧게는 1초, 길게는 수년이 걸릴지도 모르지만 바로 그 뒤를 정확히 예측하는 것은 인간의 영역에는 있지 않은 것 같다. 비로소 시간이 지난 뒤에야 그 판단에 대해 평가를 내릴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만약 그때 그렇게 했더라면”의 의미 없는 가정을 해보는 것도 우리의 정신적 건강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역사 속에서 ‘민중을 역사 전개의 주체’로 내세운 사가들의 입장에서는 소수의 엘리트들에 의한 판단이 그토록 중요하다는 것에 대해 회의할 수도 있겠으나 어쩌겠는가. 역사는 늘 다수의 판단에 의해 움직이지 않은 것을.
시대의 화려함, 타락상을 그대로 대변하는 빈(wien)회의장에 한 가지 소식이 굴러들어왔다. 이제는 이빨 빠진 호랑이라고 생각했던 나폴레옹이 엘바 섬을 탈출했다는 소식이었다. 고요한 침묵이 생겼다. 곧이어 나폴레옹이 리옹을 점령하고 국왕을 쫒아내고 어느덧 파리에 도착했다는 소식이 도착했다. 이제 언제나 불평만 가득하고 탐욕을 즐기던 영국,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러시아 군대는 나폴레옹을 견제하기 위해 서로의 군대를 합쳤다. 나폴레옹이 누구 길래. 나폴레옹은 거침없이 진격해오고 있었다. 그의 상징 백마 위에서 전군을 지휘하며 그는 저들의 연합군대를 각개 격파해나가고 있었다. 나폴레옹에게는 시간이 없었다. 엘바 섬에 갇혀 있는 동안 자신의 정치적, 군대적 기반이 왜소해졌기 때문에 단기간에 승부를 보지 않으면 저들의 연합군대가 우리를 압도할 것이란 생각 때문이었다.
자를 댄 듯한 치밀함으로 나폴레옹은 자신들의 기회와 위기를 점검하였다. 막강한 적장 웰링턴이 카트르 브라(Quatre-Bras)의 언덕에 보루를 쌓아둠에 따라 나폴레옹은 괴멸되지 않은 프로이센의 군대가 이들과 연합한다면 전세가 상당히 불안하리라 판단했다. 그는 병력의 3분의 1을 떼어 그루쉬 장군에게 프로이센 부대를 추격할 것을 명령하였다. 역사적으로 가장 ‘멍청한’ 장군으로 남는 그루쉬에게 말이다. 이제 영광스러운 나폴레옹의 전기(傳記)는 효력을 다한 것 같다. 3일 동안 비가 퍼부었다. 다음날 아침 날씨가 맑아지자 나폴레옹은 전군을 소집했다. 7만 명이 모인 찬란한 열병식에서 나폴레옹은 사자후를 토해내며 최후의 전쟁을 준비했다. 이제 웰링턴만 쳐부수면 전 유럽이 재편된다. 나폴레옹은 용감한 장군 네이를 앞세워 드디어 전쟁을 개시했다. 그러나 웰링턴도 만만치 않았다. 포연이 자욱한 가운데 나폴레옹과 웰링턴은 생각했다. 나폴레옹에게는 프로이센을 추격하고 있는 그루쉬가 도착하면 승리하는 것이고, 웰링턴에게는 프로이센 군대가 연합하면 승리한다고 말이다. 하지만 역사는 결코 나폴레옹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다. 상황이 위급함을 알고 본대로 복귀하자는 측근 참모들의 권고를 무시한 그루쉬에 의해 말이다. 그루쉬는 나폴레옹의 명령을 고집하여 흔적도 보이지 않는 프로이센 군대를 계속 쫒아갔고, 프로이센 군대는 어느덧 웰링턴 장군과 연합하여 나폴레옹 군대를 쳐부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그루쉬의 판단으로 인해 유럽의 역사가 어떻게 쓰였는지를 확인하고 있다.
조그맣고 땅딸만한 한 사내는 어김없이 아침 9시에 도서관에 도착했다. 그는 12시까지 책을 읽다가 사라졌다. 그리고 다시 1시가 조금 넘어 조금 전과 같이 창틀에 앉아 책을 읽더니 오후 6시까지 계속 그러고 있는 것이다. 그런 생활이 벌써 몇 해나 지난 것 같다. 그는 책을 읽고 나서 취리히의 슈피겔 거리에 있는 자기 집으로 향했다. 구두 수선공의 집에 세 들어 사는 그에게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다. 그는 집에서 보잘 것 없는 식사를 하고, 후질그레한 의상을 하고 있었다. 그런 그도 사람을 만나긴 하는지 가끔 카페로 사람들을 소집하곤 하였다. 1917년 3월 15일 그는 웬일로 도서관에 가지 않았다. 그는 우연찮게 자신의 고국 러시아에서 혁명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그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나와 함께 싸워 온 사람들의 죽음이 의미 없는 것이 아니었다. 막심 고리키는 매일같이 ‘모두들 돌아오라’고 하고 있었다. 이 후질그레한 남자는 이제 여유있게 러시아로 들어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조국 러시아의 혁명은 ‘민중에 의한’ 혁명이 아닌 상층부만의 교체였고, 그것을 간파한 그는 혁명을 완주하기 위해 서둘러 러시아로 돌아갈 채비를 해야만 했다. 그러나 누구도 망명객인 자기에게 선뜻 여권을 내주려하지 않았다. 조금만 늦게 되면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간다. 할 수 없이 숱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적성국가인 독일의 힘을 빌려 그는 러시아로 돌아가는 데에 성공한다. 하필 파시즘의 광기를 부리고 있는 독일에 의해서 말이다. 어쨌거나 그는 도착하고 수많은 군중에 의해 받들어졌다. 블라디미르 일리이치 울리아노프, 레닌은 그렇게 돌아왔다.
슈테판 츠바이크의『광기와 우연의 역사』는 역사의 큰 줄기가 사실은 어떠한 한명의 판단에 의해서 바뀔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특히나 츠바이크의 엄청난 글 솜씨는 책읽기의 묘미를 확실히 알려주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외국의 사례 말고도 한국 내에서 역시 이러한 한명의 판단이 세상을 바꿔놓은 경우를 듣게 된다.
1979년 10월 26일, 총을 손에 든 그는 화장실로 향했다. 얼굴에 촉촉이 베여있는 땀방울을 닦아내고 태연히 총을 감추었다. 거울 앞에서 자신의 표정을 관리하며 생각했다. “긴장하지 말자. 금방 끝날 거야. 이로서 역사는 바뀐다.” 신념에 찬 어조를 내뱉은 그는 한층 마음을 다지고 있었다. 서울시 종로구 궁정동 중앙정보부 안가에서는 한참 연회가 베풀어지고 있었다. 그는 생각했다. “지금 밖에서는 부마항쟁이다 뭐다 해서 우리를 욕하고 있는데 우린 뭐하고 있는가.” “차지철이 저 놈은 대통령 옆에 붙어 듣기 좋은 말만 해대니 욕지거리가 목까지 올라오는 것 같다.” 점점 더 긴장은 높아져가고 총을 쥐고 있는 손이 희미하게 떨렸다. 연회장에 도착한 김재규는 '야수(野獸)의 심정'으로 방아쇠를 당겼다. 날아간 총알은 정확히 대통령을 가슴을 뚫었고, 철옹성 같은 유신체제는 이날의 사건으로 인해 막을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