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

<처절하게 독서하기> 옥중 19년

이시대 2013. 3. 25. 15:00

 

 

서승의 옥중 19년

“우리는 어떤 민주주의를 만들어야 하는가.”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는 지난 17세기 이후 백인들의 지배를 받으며 갖은 인종적 차별대우, 빈곤과 억압의 2중적 생활을 하고 있었다. 아파르트헤이트(흑인차별정책)는 이러한 차별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주고 있었다. 이러한 부당한 차별 대우에 청년동맹과 아프리카민족회의를 결성해 저항한 넬슨 만델라는 27년의 옥살이를 거쳐 세상에 나와 민족적 영웅으로 추앙받았으며, 인종차별정책을 폐기시키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93년엔 노벨 평화상 수상을, 94년엔 대통령으로서 남아공을 발전시키고 세계 평화에 기여하는데 활약하고 있다.

한국에서 위와 같은 얘기가 낯설지 않다. 한반도가 분단 된 구조 하에서의 인권탄압과 정치탄압은 그리 멀지 않은 과거 그리고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번 독서 에세이에서 소개된 신영복 교수님도 20년, 황대권씨도 13년이지만 이렇게 형기를 보낸 사람이 정말 무수히 많다. 수감년도로 단순 비교하자면 한국에는 넬슨 만델라가 수십 명은 있었던 셈이다. 비전향장기수로 45년을 복역한 김선명 옹에 대한 실례를 보면 만델라의 복역이 그리 길게 느껴지지 않지만 자신의 신념을 지키고 부당한 처사에 항의하기 위해 투쟁했던 삶이라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설명해준다.

2004년 ‘동북아 평화학교’에 참석하기 위해 일본 교토로 향했다. 당시에는 민족, 분단, 평화 같은 가치들은 그다지 내 삶속에서 살아 숨 쉬는 가치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 당시에는 일본 사회의 군국주의화, 보통국가화 같은 거센 분위기가 사회를 압도하고 있었다. 교과서 왜곡을 비롯해 영토분쟁, 평화헌법 개정 같은 문제들이 날마다 뉴스를 장식했다. 그러한 와중에 일본의 학생들이 조선학교에 다니는 여학생들의 치마저고리를 커터칼로 자른다던지, 재일동포들에 대한 집단테러를 하는 현상들이 발생하고 있었다. 동북아 평화학교는 바로 그런 일본 분위기에 대해 한국학생들, 일본학생들, 재일교포 학생들이 모여 토론하고 함께 대응을 모색해나가는 자리였다.

일본 리츠메이칸 대학에서 열린 그 행사에서 한 교수님이 강연을 했다. 얼굴에 화상을 잔뜩 머금은 얼굴로 동북아 평화에 대해 역설하고 있는 모습에서 남다른 사연이 있음을 직감했는데 그 교수의 이름은 서승이었다. 리영희 교수까지 특강을 한 후에도 서승 교수의 인상은 잘 지워지지 않아 한국에 와서 이리저리 정보를 찾아보았다.

서울대 사회학과 석사과정을 마친 후 1971년 육군보안사령부에 연행되어 ‘재일교포 학생학원침투 간첩단 사건’으로 1심에서 사형, 2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19년 동안 비전향정치범으로 투옥한 한 남자의 삶은 분단의 기형적 조건에서 발생하였다. 일본에서 출생한 그는 젊은 시절 신분상의 자유로움으로 북에 갔다 온 것이 큰 화근이 되었다. 그러나 비전향 장기수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상범들이 그렇듯 북의 공산주의에 대해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닌 분단된 조국의 실제를 연구하기 위한 것이었다.

연행 후 국가에 충성할 기회를 받고 일단 석방된 그는 약 한달 남짓이 지난 4월 18일 다시 연행되어 혹독한 고문을 받고 두 가지가 요구되었다. 첫째, 서울대에 지하조직을 만들어 군사훈련반대와 박정희 3선 반대를 배후조종했다는 것, 둘째는 김상현 국회의원을 통해 김대중 대통령후보에게 공작금을 전달했다는 것이었다. 왜 다시 잡아들였는지 이제야 분명히 알 것 같았다. 이 두 가지의 요구는 너무나도 확실한 의도를 갖고 있었다. 한마디로 당시 정권교체 가도를 달리고 있는 김대중 후보에게 용공혐의를 씌우려고 한 전형적인 정치공작이었다.

서승 교수는 한 인간에게 내려진 이 참혹한 시험 앞에서 절망하였다.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형장의 이슬이 되어 사라지는 것이고 받아들인다면 민주화의 요구를 한껏 안고 있는 김대중 후보에 대한 치명적 타격, 동시에 많은 양심수들에게 말 못할 고초를 주는 것이다. 이 말 못할 고통 속에서 시름한 그는 심문관과 감시병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겉옷을 벗고 난로의 경유를 온몸에 뿌려 분신자살을 시도하였다.

 

 

 

몇 번에 걸친 대수술 끝에 목숨을 건진 그는 결국 비전향정치범으로 투옥되었다.『옥중 19년』은 서승 교수가 교도소 생활을 기록한 책이다. 황대권씨가 옥중 생명사상을 발견했다면 서승 교수는 교도소 안에서의 실제적 삶을 관찰했다. 그 생활 속에서 만났던 많은 비전향 장기수들의 삶을 조명했다는 것은 이 시대의 가장 어두운 부분을 응시했다는 것이다. 또한 사람의 신념을 인위적으로 바꾸려는 사상전향제도의 문제점들,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에서 존립할 수 없는 반공법, 국가보안법과 같은 법적 제도에 대해 접근 한 서승 교수는 1990년 석방되어 지금까지 일본 리츠메이칸 대학에서 ‘한반도 평화’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서승 교수를 책을 주목한 이유는 우선 분단의 아픔을 가장 상징적으로 대변할 수 있는 인물이고 또한 민주주의의 위기라고 말하는 한국사회에서 우리가 ‘민주’라는 개념이 단순히 정권을 바뀌는 차원에서 논의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기 위함이다. 『옥중 19년』을 통해 한반도 평화의 가치와 민주주의 성숙에 대한 고찰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