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환의 view

정여립과 독서인

이시대 2015. 4. 16. 12:59

 

 

 

-정여립과 독서인-

선조 22년 10월 2일 황해감사 한준의 비밀 장계가 선조 앞에 올라왔다. 정여립의 역모사실을 고변하는 장계로서 호남정치인들의 맥이 씨가 마르게 되는 <기축옥

 

사>의 시작이었다.

그날 밤, 선조가 참석한 가운데 3정승, 6승지, 의금부당상 등을 포함한 중신회의가 열렸다. 3정승은 모두 ‘동인’이었다. 정여립이 율곡 이이를 통해 정치권에 입문한 ‘서인’ 정치인이었지만 이이의 말년엔 이이를 비판하고, 동인으로 돌아선 까닭에 3정승으로서는 그의 역모가 믿기힘들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정여립은 어떤 사람인가” 선조의 물음에 우의정 정언신만 대답했다. “그가 독서인임을 알뿐” 역모를 하기엔 가당치 않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사건은 자꾸 확대되어 나갔다. 실체적 규명을 파악하는 그 ‘느릿함’에 비해 안악군수 박충간으로부터 전달받은 ‘역모시나리오’는 선조와 서인의 ‘조급한’ 의심을 사기에 충분했고, 혐의를 받던 정여립이 자살해 사망했다는 ‘설’에 따라 혐의는 사실로 굳어져갔고, 놀랍게 때마침 시와 술을 좋아하는 로맨티스트이자 서인 강경파 정철이 사건의 조타수를 맞으며 동인들의 피해가 급속히 확산되었다. 정철은 마치 피에 목마른 사람처럼 '살생부'를 확대해나갔다.

정여립은 과연 선조와 정철이 생각하던 인물이었다.

그저 독서인인 줄 알았던 정여립은 짧은 관직 경력을 뒤로하고, 전주에 내려와 ‘대동계’라는 향토조직을 만들어 ‘혁명무력’으로 의심되는 집단을 양성하고 있었던 것이다. 비록 대동계가 갖고 있는 ‘공개성’과 허술하기 짝이 없는 역모시나리오를 통해 역모자체를 부정하는 시각도 타당성을 지니고 있지만, "천하는 공물이니 임금의 아들이 아닌 유자격자가 국정의 최고책임자를 맡아야 한다"는 ‘천하공물설’을 설파하고, <정감록>의 예언사상을 유포한 흔적을 볼 때, 정여립은 이미 교조성을 띄기 시작한 주자성리학 세계 조선에서는 이단이자 혁명가였던 것이다.

체계적인 기록이 없어서 아쉽지만, ‘독서인 정여립’, ‘아름다운 선비 정여립’ 혹은 희대의 천재라고도 불린 정여립의 사고와 조직체계가 발전했다면, 왜란 시기 나라를 버리고 망명하려했던 선조와 지배체제, 그러면서도 전후 책임을 정적과 백성들에게 전가했던 지배체제의 모순을 내부로부터 타파해나갔던 훌륭한 역사를 가질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 당시, 정여립은 과연 무슨 책을 읽고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