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

20대의 마지막, 1000권 독서의 기록

이시대 2019. 1. 27. 16:30

20대의 마지막, 1000권 독서의 기록

김동환의 view 2011/12/30 00:29 이시대

20대의 마지막, 1000권의 독서 기록

 

오늘은 자기자랑에 넘치는 오글거리는 글을 하나 작성하고자 합니다.

 

오랜 시간을 두고 달성하고자 했던 목표가 제법 훌륭하게 완수가 되는 20대의 마지막을 보내고 있습니다. 20세의 어느 날, 우연한 사건을 계기로 목표한 1년에 100권 독서가 10년간의 일정으로 달성되었습니다. 정말 긴 호흡이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30대가 된다고 해도 독서 계획을 중단할 마음은 조금도 없습니다. 왜 독서하는 사람들이 행복한 삶을 살아가며, 얼마나 풍족한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는가 그 달콤한 열매의 맛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비록 처음에는 글자를 보는 것에 울렁증을 느끼기도 했지만 이내 익숙해지더군요. 스토리 전개에 익숙해지고 글자를 보는 것이 어렵게 느껴지지 않는 순간엔 어느덧 흔들리는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손에 책을 들고 있는 모습을 확인하기도 합니다. 그 뿐만 아닙니다. 어두운 공간에서는 후레쉬를 켜서라도 책을 펼치기도 하며, 화장실에서 볼일을 다 마쳤음에도 불구하고(?) 밖으로 나가지 않는 모습을 확인할 수도 있었습니다.

 

여튼 계기는 이렇습니다.

 

대학교 1학년 경영학과에 입학한 저는 전공과는 달리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에 더욱 많았으며 나름 개념청년이라는 자족을 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세상이 어쩌고저쩌고 하는 주관적인 평가 방식과 깜냥으로 세상을 바라보던 저에게 ‘함석헌선생기념사업회’의 김옥현 시인은 조용히 저에게 함석헌 선생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 라는 책을 선물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이 책은 민중사학의 도입기에 수많은 청년들에게 영감을 준 책, 곧 의식화 서적으로 불리는 책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안타깝게 이 책의 의미를 단 1%도 알지 못했습니다. 얼마 후 다시 만난 김옥현 시인 앞에서 저는 그 책을 읽은 소감에 대해 입에 나오는 대로 지껄였습니다. 이것이 부끄러워 다시 집으로 돌아와 책을 다시 찬찬히 바라보는데 너무나 큰 좌절감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저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들어와 이제 지성인 소리를 들어야 할 것 같은데 실은 그간의 제도 교육이 저에게 아무런 울림을 주지 못했던 단순 지식 밖에 되지 않았다는 생각, 그 처절함을 느꼈습니다. 그 처절한 감각을 극복하고 싶었습니다.

 

최대한 많은 사람을 만나고, 최대한 많이 읽자. 그렇게 정리했습니다. 김옥현이라는 시인이 영감을 준 것처럼, 책이 목표의식을 준 것처럼 두 가지를 잘하자 계획했습니다. 읽지 않던 신문을 들었습니다. 재미를 줄 수 있는 자기계발서부터 들어봤습니다. 그렇게 1년을 정말 집중해봤더니 우선 글자를 읽는 울렁증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한 가지 사실은 그렇게 읽어 댄 자기계발서는 지금 생각해도 남는 게 없습니다. 어떤 내면의 깊은 자기 철학에 기반을 두지 않은 테크닉은 감동도 여운도 줄 수 없다는 깨달음을 마지막으로, 자기계발서는 더 이상 읽지 않기로 했습니다.

 

1년이 지나고 책을 읽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 않다는 것을 느낄 때 즈음, 학교 도서관에서 조영래 변호사의 『전태일 평전』을 읽게 되었습니다. 스토리가 있는 자서전, 평전은 자기계발서보다 읽기도 수월할뿐더러 전후맥락이 전개되기 때문에 분명 초보 독서가에게 있어서는 훌륭한 영역입니다. 아무튼 천천히 전태일 평전을 읽어가던 저는 이 엄청난 ‘의식화 서적’ 이 주는 충격에 너무나 소스라친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 이른바 단어도 생경한 ‘이 땅의 민중’들의 역사란 것은 이런 것이구나. 눈물범벅, 콧물범벅 얼굴이 망가지니 책이 어떻게 사람의 인식을 변화시킬 수 있는지 다시금 체험했습니다. 법조문을 정확히 해석할 수 있는 단 한명의 대학생 친구만 있었더라면 전태일은 지금의 모습으로 남아있지 않았겠죠. 그 삶을 재현해낸 조영래 변호사의 삶이란 또 무엇인가. 엘리트 기득권을 충분히 가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던져버리고, 저 아래로 내려가는 삶. 그것이 주는 아주 강한 여운은 지금까지 간직하고 있습니다.


 

정리되지 않은 여러 가지의 복잡한 단어와 얼키설키 섞여있는 여기저기의 스토리의 잔상을 머릿속에 간직한 채 군대에 간 저는 이내 그 갈증, 그 허무함을 극복하지 못하고 다시 미친 듯이 책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병영 내에 있던 ‘진중문고’의 책들을 차례로 격파하고, 아침 기상 30분전에 남 몰래 일어나 못다 읽은 부분을 읽었으며, 야간 경계를 마치고 돌아온 후 ‘짬’이 안 됨에도 불구하고 조용히 침낭 속으로 들어가 후레쉬에 의지하여 리딩을 하게 되었습니다. 군대 초반기 가장 감명 깊게 읽었던 책은 지금은 고인이 된 장영희 교수의 『문학의 숲을 거닐다』입니다.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은 사람의 내면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었습니다. 언제 써먹을지도 몰라 책 안의 구절들은 노트하기도 하고 외우기도 하고 그랬던 기억이 너무나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짬이 약간 되는 상병시절은 그야말로 ‘학습’의 시간이 넘쳐나더군요. 그 때를 생각하면 정말 군대 다시가고 싶습니다. 어느 때보다 많은 책을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군바리가 나라를 지킬 시간을 제외하고도 독서할 시간이 넘치더군요, 다행히 중대장과 소대장이 저와 취미가 은근히 겹쳐서 나중엔 휴가 나와서 책을 교환하기도 하고, 품평하기도 했습니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은 군대의 의식보안이 상당이 허술하더군요. 뭐 그것이 통제한다고 되냐 싶지마는 군대에서 상당히 많은 시간을 투자했던 책들이 혁명가들의 삶을 다룬 이야기였습니다. 뭐 『체게바라 평전』 정도야 왜 그런지 군인들이 더 좋아하는 책입니다. 제 생각엔 그 책이 지닌 혁명의 내용보다는 이미 상업화된 멋진 의사이자 군인인 ‘체’의 모습에 대한 대리만족의 일종 아니었나 싶습니다. 국내를 살펴봐도 피부만 다르고, 체의 국제적 성격과 달리 국내에서의 혁명에 집중했던 빨치산이자, 공산주의 혁명가 이현상의 일대기라던가 만주벌판에서 일본의 정규군을 초토화시킨 홍범도, 김좌진의 독립운동 현장, 역시 만주에서 마에다 중대를 전멸시킨 김일성의 항일기록은 분단된 이 땅의 이데올로기에 제약되어 재조명조차 되기 어려운 환경에 처했다지만 체에 열광하고 이현상에 침묵하는 모습이 논리적으로는 모순인거죠. 그런데 이런 내용들을 군대에서 상당부분 읽었습니다. 뭐, 또한 한국군을 일으키고, 공비를 토벌하고 전쟁에서 승리를 장식한 백선엽 옹의 내용도 접했습니다만 그분이 걸었던 길을 살펴봤을 때, 후한 평가를 줄 수는 없는 일이죠.


그렇게 전역했습니다.

이등병 때부터 기록한 한권의 독서록의 마지막 넘버링은 255권이었습니다. 군대 인생 성공한 것이라 감히 여겼습니다. 당시 소대장은 전 군에서 가장 책을 많이 읽은 사람으로 추천하고 싶다고 농담조로 말하기도 했지만 농담이 농담처럼 들리지 않고, 또 싫지 않은 기분이었습니다. 무슨 대회라도 있었으면 휴가를 탈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암튼 군대의 독서 내용을 정리해보니 느끼는 것이 닫힌 공간의 특성상 일관된 독서 혹은 공부를 하기는 여간 쉽지 않다고 느꼈습니다. 워낙 군인들이 다양한 책을 돌려보다 보니 재밌는 책이 많아 먼저 손이 가는 거죠. 예컨대 이외수 씨의 『들개』와 같은 책을 보면 마니아가 되어버려서 이외수씨의 다른 책을 보느라 애초 계획이 흐트러지게 됩니다.

 

(군대시절 독서기록)

그렇게 흐트러진 독서습관을 다시 잡기 위해 선택한 독서계획은 바로 역사책 읽기입니다. 당초 『뜻으로 본 한국역사』로 인해 무지를 느꼈던 것이 별로 해소된 느낌이 아니었습니다. 우선 읽기 쉽고 연대기 순으로 정리가 잘 되어 있다는 전북대 강준만 교수의 『한국 현대사 산책』을 읽어봤더니 생각보다 현대사가 훨씬 쏙쏙 들어왔습니다. 특히 처음에는 민주주의 발전단계를 확인하는 몇 가지의 흐름을 잡아내고, 정치적으로 의미 있는 사건들을 정리해가며 읽기 시작했더니 이건 뭐 도저히 책에서 손을 뗄 수가 없더군요. 게다가 완전히 잊혀져버렸지만 그 역시 우리의 역사인 사회주의 운동사들을 완벽하진 않아도 나름 정리 작업을 하다 보니 이른바 ‘정치적 개념’이라는 것이 잡히기 시작했습니다. 추천할만한 책으로는 강만길 교수의 저서들과 한홍구 교수의 저서들입니다. 강만길 교수는 민족운동의 관점에서 근현대사를 서술하기 때문에 남, 북이 통일되어 가는 과정을 역사인식의 주류적 흐름으로 인식하는 것 같았고, 한홍구 교수는 스칼라피노 교수와 작업한『한국공산주의운동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지만 현대사를 억눌린 이들에 대한 관점에서 출발하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이 두 분의 책을 기준 잡아 역사를 공부한다면 대강의 흐름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동시에 역사학과 아주 밀접한 관련을 가진 정치사를 이해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왜 5.18이 발생했는가, 왜 3당 합당이 탄생했는가, 정치세력의 연대와 연합은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가, 수평적 정권교체가 가진 의미는 무엇인가, 진보정치는 어떻게 형성, 발전되었나 하는 등의 질문에 대한 답을 차례로 기록하고 정리해보니, 머랄까 큰 호흡 같은 것이 생겼습니다. 과거를 통해 향후의 정치 전개를 예측하는 따위의 글을 써보는 것도 의식향상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10년 동안 대략 천권의 책을 읽어냈습니다. 다소 부끄럽지만 이것은 저의 일생에 있어 매우 소중한 일이고 남들에게 소개시켜주고 싶은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10년이 지나 이제 30대가 다가옵니다, 10년의 독서 결과는 딱 한가지의 결론만을 던져줬습니다.

 

“아직 멀었다”

 

정말 먼 것 같습니다. 공부하고 공부해도 끝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이 정말 행복하고, 무언가 나의 공간을 채우는 느낌이 강하기 때문에 여러분께도 꾸준한 독서를 강추하고 싶습니다. 지식을 쌓는 느낌도 느낌이지만 일상에 매몰되지 않고 그것을 극복할 에너지를 줍니다. 저는 30대가 되면 새로운 독서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1년에 100권씩 읽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우선 30대에는 정치사를 좀 더 공부한 다음, 기초과학 분야에 대한 공부를 하고 싶습니다. 칼세이건의 『코스모스』 같은 책을 완벽히 이해해보는 것이죠. 그럼 아마 세상에 대한 또 다른 성찰이 있을 것 같습니다.



끝으로 세상사를 이해하기에 큰 도움을 줬던 책들을 정리해봅니다. 우선 조정래 작가의 아리랑-태백산맥-한강은 근현대사를 감각적으로 이해하는데 필수라 생각합니다. 태백산맥은 상당시간 이적도서로 분류되었는데 이미 1천만 명이 넘게 읽었다고 하니, 이적이란 단어가 아무런 의미가 없는 단어가 되는 거죠. 그런 책 일수록 필수라는 이야기입니다. 아리랑과 태백산맥의 맥락을 학술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의 기원』을 추천합니다. 한림대 박명림 교수의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도 있는데 저는 아직 못읽어봤네요. 조선사에 대한 기초이해는『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이 좋습니다. 솔직히 박영규 작가의 『한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은 텍스트가 딱딱해 이해하기가 어려워요. 그리고 근대사에 대한 연구 성과는 많은 것 같은데 대중서적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강준만 교수의 10권짜리 책 『한국 근대사 산책』을 추천합니다. 양은 4권 밖에 되지 않아 적지만 훌륭한 내용이 많은 한홍구 교수의 『대한민국史』도 좋습니다. 제가 소개한 책들의 흐름을 반대하고 나선 일단의 그룹, 교과서포럼이 만든 『대안 교과서』도 비교 분석하면 좋겠지만 별 영향력은 없습니다. 이미 역사학계에서 ‘정리당한’ 내용을 들고 오니 새롭지도 않고, 풍부하지도 않은거죠.





정치 분야로는 경남대 심지연 교수의 저서들을 추천해봅니다. 현대 정당사를 다룬 『한국정당정치사』가 이해하기 쉬우며,1945년 해방 정국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를 하신 듯 『조선신민당연구』 라든지 『인민당연구』 『한국민주당 연구』는 해방정국 이해의 단초를 세울 수 있습니다. 북한 정치사로는 이종석 박사의 『현대북한의 이해』라던가 와다 하루키 교수의 저서들을 살펴보면 흐름이 잡히는 것 같습니다.



자서전, 평전을 살펴보면 우선 조영래 변호사의 전태일 평전은 필수고, 이기형 선생의 『몽양 여운형』김삼웅 선생의 『약산 김원봉 평전』 님 웨일즈의 『아리랑』 정병준 교수의 『우남 이승만 연구』 김경일 교수의 『잊을 수 없는 혁명가들에 대한 연구』가 생각납니다. 현대 정치인으로서는 내용 있는 책으로서 서거 후 출간 된 『김대중 자서전』과 이전의 『나의 길 나의 사상』이 있고 노무현 대통령과 관련해서는 유시민 통합진보당 공동대표가 대표 집필한 『운명이다』 가 필수도서이며, 민주당의 정서를 갖고 있으면서도 노무현의 정치를 반대한 김만흠 교수의 『노무현 정권』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보수정치의 이데올로그가 된 조갑제씨의 박정희 관련 책들도 주요합니다. 이념적 보수 세력의 정치패턴은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그 외에 이명박과 같은 사업가들의 책들은 정치적 내용을 함축한다기 보단 자기계발서를 읽는 느낌이 나기 때문에 강추하진 않지만 그래도 읽어볼 필요는 있습니다.


 

오늘도 자기 전 조용히 엎드려 어제 못다 본 책을 펼쳐 보니 한 장의 명함이 나옵니다. 책갈피로 명함을 쓰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건만 그래도 명함에 쓰인 이름을 한 번 더 기억해봅니다. 적어도 한권의 책을 읽는 데는 며칠이 걸리기 때문에 그 며칠 동안 수없이 이름을 보게 됩니다. 여지없이 좋은 인상으로 다가옵니다. 행복하세요. 그리고 같이 독서합시다. ^^

마지막으로 서울 대부분의 중고서점을 방문한 방문기를 블로그에 실었습니다.
관심있으시면 들러서 정보 확인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