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일본군의 파벌과 2.26
<커버스토리>일본군의 파벌과 2.26
커버스토리 2012/07/17 00:03 이시대
일본군의 파벌과 2.26
무릇 모든 정치세력은 파벌간의 갈등을 몰고 온다. 이것은 근원적인 문제로서 정치에 있어 파벌을 부정하려 한다고 해서 그 존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일본의 흥미로운 파벌사 중 한 장면.
1936년 2월 유난히 큰 눈이 내린 새벽, 1400여명 정도로 추정되는 일단의 군인들이 소리없이 행군을 단행했다. 이들은 이내 도쿄의 주요 건물을 장악하고 1순위로 내무상 사이토 마코토를 살해했다. 사이토 마코토가 누군가. 조선의 기만적 문화통치를 주도한 일본의 A급 정치가 아닌가. 마코토 역시 군인들에게는 제거해야 할 대상에 다름 아니었다.
거사를 일으킨 명분은 황제를 근위하는 ‘존황토간’. 이들이 보기엔 갈수록 황제의 권한이 약해지고, 황제의 권력을 소비하는 일단의 정치가들이 ‘간신배’로 보였다. 육군 내부엔 이렇듯 황제의 영도를 앞세우는 황도파와 군내에 관료적 시스템을 가져온 통제파가 갈등을 일으키고 있었다. 황도파가 농촌을 비롯해 중산층 이하의 하급출신 구성이라면 통제파는 상대적으로 엘리트 집단으로서 근대적 군사지식을 쌓은 집단이었다.
정당, 재벌, 엘리트들의 부패와 지방 경제의 피폐라는 상황이 이어지자 통제파를 불신한 황도파가 군부를 장악하고 사회를 개조하려는 이른바 이 ‘2.26’ 구데타는 그러나 천황이 나서서 반란군으로 규정하는 바람에 2만4000천의 진압군 앞에서 철저히 봉쇄당하고야 말았다.
황도파가 제거된 일본의 군부는 통제파가 강화되는 동시에 숙군이 단행되고, 각료들을 주무를 수 있었으며 대규모의 예산을 단행하는 등 군국주의 체제를 착실히 다져나갔다.
하층 신분을 이뤘기에 어쩌면 그 시대의 고통에 누구보다 근접할 수 있었던 황도파는 기타 잇키의 <일본개조법안대강>을 읽으며 황제는 존재하지만 귀족은 철폐되고, 보통선거 실시, 사유재산 제한등 혁명적 구호를 내걸로 경시청을 장악한 것이었다. 권력을 중심으로 한 파벌이 아닌 가치 대 가치의 대립이 군 부대에 있었다는 사실이 경이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