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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

<처절하게 독서하기> 누가 미국을 움직이는가

by 이시대 2013. 2. 26.

 

 

누가 미국을 움직이는가.(소에지마 다카히코, 들녘, 2001)

“보수, 혁신을 모두 가능하게 하는 미국의 정치구조”

2009년 9월, 미국 국민 3200만 명은 일제히 TV앞에 눈길을 고정시켰다. 그들은 흥분을 굳이 감추려 하지 않았다. 대통령 오바마는 이날 미국의 건강보험개혁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정치에 대한 혐오보다 하나의 긴장감 있는 스포츠로 여기는 미국 사회는 이 소식이 가져 올 영향에 한껏 부풀게 되었다.

대단한 도전이다. 미국의 의료서비스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편인데, 각종 보험회사 같은 사기업이 이를 방어하고 있어서 저소득층에 대한 포괄적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기 어려운 환경에 처해있었다. 많은 정치지도자들이 선거 때마다 이에 대해 언급했지만 철옹성을 무너뜨리기 쉽지 않았다. 오바마의 건보개혁은 앞으로도 많은 장애물에 부딪히게 되겠지만, 하나의 실제적 단계에 접근해있다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러한 개혁을 가능하게 한 요소들을 두루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대통령 오바마의 의지다. 의지가 흔들리면 장애물이 커지게 마련이다. 실제로 1993년 클린턴 대통령은 보수 세력의 엄청난 반대로 건보개혁에 실패한 적이 한다. 두 번째로 각료들과 민주당의 합심이고 이를 국민들이 확고하게 지지해줘야 한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 보험회사들을 배후에 둔 민주당 내의 반대파들을 설득하고 공화당 의원들의 반대를 희석시키는 작업을 해야 한다. 많은 조건들을 달성시키고 있는 오바마 행정부에 사람들의 기대는 더 몰리고 있다. 뛰어난 정치력이 있다는 것이다.

문득 오바마 행정부의 진전을 생각하다 보니 미국의 정치 구조가 궁금해졌다. 사실 미국을 생각할 때, 한반도와의 관계에서 주로 ‘패권성’에만 초점을 맞춘 측면이 있었고 이를 싸잡아 해석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공화당의 미국이건, 민주당의 미국이건 그냥 ‘미국’이라는 식으로 말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언제나 고민해본다. 나의 판단과 신념이라는 것이 무엇에 근거한 것인지, 그 판단과 신념이 나약한 토대 위에서 설정된 것이라면 신념을 앞세운다는 행위가 얼마나 무서운 행위인 것인지.

위와 같은 개혁을 단행할 수 있는 구조, 그리고 군사적으로 전 세계를 압도할 수 있게 하는 구조는 사실 미국 정치의 역동적이면서도 잘 짜인 시스템에 있다. 소에지마 다카히코의『누가 미국을 움직이는가.』는 이러한 시스템과 그 시스템을 추동하는 미국의 실력자들을 분석한 책이다. 2001년 발간된 책이라 미국의 현재를 들여다보는 구체성은 떨어지지만 그 분석틀은 유용하다.

이 책이 바라본 미국의 정치 구조는 상당히 치밀하게 구성되어 있다. 한국과 일본에서처럼 특정 정파가 ‘인물’에게만 쏠려 파벌정치라는 폄하가 있는 것과 달리 미국은 인물은 중시 되면서도 그 ‘인물이 어떠한 이념과 신념’을 대변하는 지 훨씬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의미다.

예를 들면 파벌의 중심이 일본의 ‘오자와 파벌’과 같이 특정 인물의 현실적 권력을 중심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 케인스 경제학파, 신자유주의파, 벤담주의, 버크주의 등 특정 사조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사실은 굉장히 중요한 것인데 무책임하고 무분별한 정치적 이합집산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정치적 ‘안정’을 기대할 수 있고, 어떤 사조가 국민적 지지를 강력히 받으면 역시 엄청난 혁신을 가능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미국의 민주당을 구성하는 그룹은 신자유주의, 급진자유, 거대노조, 글로벌리스트 등이 있고, 공화당 내부에는 신보수주의, 보수본류, 국내문제 우선주의, 차이나 로비, 종교 우파 등이 있다. 우리는 실제 오바마 대통령이 당선 되었을 때, 클린턴이 떠오르고 민주당이 한반도 평화에 기여할 수 있을 거란 막연한 기대를 가졌는데, 이 기대가 여지없이 깨진 것은 미국의 민주당 주류가 북한의 김정일을 그다지 좋게 보지 않는다는 사실에 있다. 과거 소련과의 군비 경쟁에서 승리하는 데 기여했던 것은 민주당 정권, 그 안에서 미국의 군사력에 의해 세계 질서를 유지하려고 한 글로벌리스트들의 입지가 높았다는 것을 말한다.

 


가장 최근, 부시 대통령의 공화당에서 네오콘들의 영향이 부각됐었다. 이들은 과거 <파티즌 리뷰>와 같은 좌파 잡지에 글을 기고하고, 학생운동을 주도했던 그룹이다. 소련 붕괴와 같은 장면을 목격하고 노선을 바꾼 그들은 공화당 내에서 부시를 지원해 전 세계의 위기를 촉발했던 그룹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공화당은 전통적으로 국내문제 우선주의자들이 포진해왔었다. 이 말은 즉 민주당이나 공화당을 어떤 특정한 하나의 시각으로서 설명한다는 것이 애초에 무리가 있다는 말이 된다. 한국과 같이 미국 정계의 변화가 바로 국내에 영향을 미치는 곳에서 미국 정계를 세밀히 분석할 필요성이 높아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미국의 정치 구조를 들여다보며 미국이 정말 어떻게 세계의 패권을 누릴 수 있는 지 알 수 있게 되었으며, 오바마 행정부의 각료와 민주당 내 주류의 성향을 공부해 볼 필요가 생겼다. 또한 흔히 잘나간다는 선진국의 정치구조가 문득 궁금해진다. 배울 수 있는 것은 다 배워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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