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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강화회의3

3.1운동의 국제적 성격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잠들기 전 잠깐 복기해본다. 자고 일어나면 그냥 세상이 바뀌어 있는게 아니듯 3.1운동의 발생 근원과 파급효과에 대해 주억거려본다. 너무 큰 오류가 있지 않은 이상 가볍게 지나치면 좋을 듯 하다. 3.1운동은 우선 그 기획과 파급효과가 국제적 성격을 가졌다는 점을 먼저 떠올려본다. 비교적 조직적 항일운동이 가능했던 중국에서는 이미 임시정부 설립 이전인 1917년부터 예관 신규식을 중심으로 '민족대단결선언'을 통해 독립운동의 대표적 지도기관을 설립할 것을 주장하여 상당한 호응을 얻고 있었다. 망명 정부구성이라는 '큰 일'이 논의되자 명망있는 독립운동가들의 상당수가 중국으로 몰려들었고, 1918년 11월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미국 윌슨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가 발표되자 망명 .. 2019. 3. 2.
문재인 대표의 현충원 참배 온라인 상에 잠깐 문재인 대표의 이승만, 박정희 참배에 대해 '관대한' 의견을 표시했지만, 그 이유를 좀 더 서술해보고자 한다. 나는 이승만이 한국의 민족해방운동사상(독립운동사상) 그다지 기여한 바 없으며, 오히려 해방 이후 친일파가 득세한 데 대해 가장 큰 책임이 있다는 이유로 '건국의 아버지' 와 같은 쓸데없는 칭송은 하루 빨리 사라져야 한다고 믿는 편이다. 비록 한일강제병합 이전 독립협회를 통해 왕정을 타도하고 민주공화제 도입 같은, 당시로서는 인류발전사적인 변혁운동을 시도 하기도 했지만 나라가 망한 이후의 행보를 보면 한심할 정도라고 생각한다. 전가의 무기로 홍보되는 '외교독립론' 역시 파리강화회의 실패 이후에는 결과적으로 해방운동사상에 있어 그다지 유효한 노선도 아니었지만 오히려 독립청원으로 인.. 2015. 3. 2.
유영익과 이승만 살리기2 지난 번 '유영익과 이승만'을 다룬 글을 두고, 투박하다는 의견이 있어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해봤다. 기실, 그 시기 명백한 친일활동과는 거리가 있던 이승만을 두고 자로 잰 듯 매국의 흐름에 선두에 있었던 것처럼 표현한 부분에 대해 먼저 반성하는 마음을 갖는다. 누구나 그렇듯 어떤 사람의 행위 자체는 행위를 할 그 당시 결과를 예측하기 힘들다는 점을 간과했던 것 같다. 해석은 보통 어떤 행위에 대한 동기와 과정, 결과를 통째로 놓고 보는 일이기 때문에 '사후평가'가 되지만, 즉각적 판단이 필요한 당시의 복잡한 환경속에서 내리는 정치인의 행위를 한면으로만 규정해서는 안된다는 평범한 사실을 깨닫는다. 지난 글은 정치서적이 아닌 교과서를 두고 이승만을 과하게 부풀린데에 대한 반감이 크게 작용했던 것 같다. 가.. 2013. 10.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