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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ical view48

6월의 독립운동가 권오설, 낯선 이름이지요? *이 글은 6월 1일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글입니다. 6월의 독립운동가, 권오설? 종종 국가보훈처 홈페이지에 접속해 이달의 독립운동가에 누가 선정됐는지 지켜보는 사람이 있다. '6월의 독립운동가'에 이름을 올린 사람은 권오설·이선호·박래원·이동환 선생. 그 공적을 "1926년 6월 10일 순종의 장례일(인산일)을 기해 만세 시위로 일어난 학생 중심의 민족 독립운동인 '6.10만세운동을 기획하고 참여한 주요 인물"로 정의내리고 있다. 1987년 6월 10일에 발생한 6월 항쟁은 널리 알려졌으나 서슬퍼런 조선총독부 통치 시절 1926년의 6월 항쟁은 대체 무엇이길래 민족독립운동이라고 정의한 것일까. 또 권오설은 구체적으로 어떤 실천을 통해 독립운동가로 선정된 것일까. 호기심이 펜을 잡기에 이르렀다. 분명 국가.. 2021. 6. 3.
도쿠가와 이에야스: 일본 전국시대를 읽는 법 “사람의 일생의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의 걷는 것과 같다. 서두르면 안된다. 무슨 일이든 마음대로 되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면 굳이 불만을 가질 이유가 없다.“ 전국시대, 일본이 무기를 버리게 했다고 평가받는 사람. 도쿠가와 이에야스. 야마오카 소하치의 불후의 명작 소설 '대망'을 극화한 요코야마 미츠테루의 만화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정말 구성이 탄탄한 정치철학책이다. 사실 원작 대망에서 표현되는 일본식 표기들은 이름에서부터 다타데루, 다타쓰루 등 동어표기들이 많고, 이에야스 한 사람만 보더라도 어릴 때 이름은 다케치요에서 시작하여 이에야스까지 5개의 이름을 거치는 만큼 난해한 면이 많아 초반부터 이해하기가 어렵다. 몇년 전 몇번이나 시도했어도 대망 1권의 절반을 소화하지 못한 까닭이다. 그러한 시도.. 2021. 5. 25.
3.1운동의 국제적 성격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잠들기 전 잠깐 복기해본다. 자고 일어나면 그냥 세상이 바뀌어 있는게 아니듯 3.1운동의 발생 근원과 파급효과에 대해 주억거려본다. 너무 큰 오류가 있지 않은 이상 가볍게 지나치면 좋을 듯 하다. 3.1운동은 우선 그 기획과 파급효과가 국제적 성격을 가졌다는 점을 먼저 떠올려본다. 비교적 조직적 항일운동이 가능했던 중국에서는 이미 임시정부 설립 이전인 1917년부터 예관 신규식을 중심으로 '민족대단결선언'을 통해 독립운동의 대표적 지도기관을 설립할 것을 주장하여 상당한 호응을 얻고 있었다. 망명 정부구성이라는 '큰 일'이 논의되자 명망있는 독립운동가들의 상당수가 중국으로 몰려들었고, 1918년 11월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미국 윌슨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가 발표되자 망명 .. 2019. 3. 2.
김원봉은 대체 어디로 가야 하는가 국가보훈처 자문기구인 '국민중심 보훈혁신위'가 의열단 단장을 역임한 김원봉 선생(이하 김원봉)을 독립운동자로 권고하자 자유한국당이 색깔을 앞세워 반대하고 있다. 한국당은 김원봉이 북한 정부 수립에 참여하고 국가검열상에 된 것에 대해 예의 그렇듯 혐오의 표현을 쏟아내고 있다. 일반적으로 1948년 친일경찰 노덕술에게 고문을 당해 월북한 것으로 알려진 김원봉이 국가검열상에 올랐다 하더라도, 약간 훗날 박헌영의 남로당계 숙청과 58년 8월 김두봉의 연안계가 숙청되면서 김원봉도 58년 말 모든 정치적 직위를 박탈당하고 최후마저 불투명하다. 또한 6.25전쟁에서 그의 친인척 8명이 김원봉으로 인해 남한에서 총살 또는 살해된 바, 김원봉은 현재 남한 역사에서도 북한 역사에서도반가운 인물만은 아니다. 그러나 그렇게 .. 2019. 2. 10.
흥선대원군의 삶 흥선대원군의 삶김동환의 view 2014/02/22 00:44 이시대 대원군의 삶을 들여다보고 있다. 예전에 대원군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척화에서 오는 고루함, 천주교 박해, 무리한 경복궁 중건에 따른 민중들의 삶의 피폐 등이었는데 역시 한 인물에 대한 삶을 함부러 재단해서는 안되는 모양이다. 서원 철폐와 호포제 실시, 세도정치 청산, 비변사 폐지는 그 당시에도 그렇게 느껴졌겠지만 지금봐도 개혁의 최고수준이다. 이렇게까지 할 수 있었던 것은 섭정기간에 단기간을 통해 쌓아올린 리더쉽이 단단히 한몫했음을 알 수 있다. 민중들은 그의 말을 신뢰했고 섭정 이후 고종 친정시기 찾아온 국란기마다 그의 역할이 요구되었다. 이런 정치에너지는 과연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과거를 보니 여실히 그 답이 나온다. 왕의 종친.. 2019. 1. 29.
의열단원들의 삶처럼 의열단원들의 삶처럼김동환의 view 2014/03/09 00:21 이시대 3월 1일 이후로 머리속에 빙빙 도는 사람들이 있다. 처음엔 48년 통일정부의 수반이 되기도 할 뻔한 김규식 선생에 대한 일대기를 짧게 기록해보려 했지만이미 너무나 유명해서 그런지 '굳이' 라는 생각이 들고..한국의 현대사에서는 도무지 다룰 수가 없는 '조국광복회'의 권영벽에 대한 기록을 남겨볼까 하다 역시 무리수를 둔 다 생각하여 그만둘까 하다가, 우연히 님 웨일즈의 '아리랑'에서 본 문구가 생각나 책을 뒤적였다. 1930년대 당시 상해는 서울에서 넘어온 항일운동가, 만주에서 온 운동가, 미국에서 넘어온 운동가, 소련에서 넘어온 운동가들이 한데 모여, 정치정세를 토론한 '민족적 낭만'이 풍부한 도시였다. 27년 홍커우공원에서 벌어.. 2019. 1.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