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박근혜7

다시 떠오른 '세월호 7시간', 국가 회복의 첫 단추 듣도 보도 못한 최순실의 국정농단 파문으로 연일 혼란이 계속 되고 있다. 필자를 비롯해 많은 국민들은 지난 한 주 동안 종편들의 '입'을 하루 종일 기다리는 '진귀한' 경험을 했을 것이다.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대체 어디서부터가 진실이고 어디서부터가 가공인지 혼란스럽다. 최순실을 향한 누군가의 복수극일지 모른다는 정보도 넘쳐흐르고 있다. '박근혜 하야', '최태민', '최순실', '고영태', '정유라', '안종범', '정호성', '영세교'라는 단어가 매일 포털사이트 최상위에 배치된 것은 그만큼 국정농단을 지켜보는 국민들의 관심과 분노가 높다는 뜻일 것이다. 동시에 국정농단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어 보이는 키워드가 지난 10월 26일~28일 3일 동안 지속적으로 검색순위 1위에 랭크되어 있었다. '세월호.. 2020. 5. 10.
흥선대원군의 삶과 정치 -흥선대원군의 삶과 처세- 정조 사후 드러내놓고 정조의 통치에 반대하던 노론 벽파가 순조를 위시하여 정권을 장악했던 시기, 말이 전제주의 국가지 왕권은 무너지고 60년 안동김씨의 세도정치가 싹트고 있었다.(이 대목을 생각해보면 2년 전의 박근혜와 십상시 파동을 겪은 지금의 박근혜가 과연 같을까 싶다. Jp가 박근혜를 향해 '외로운 자리'라고 했을 때 아마 속으로 눈물이 콸콸 흘렀을 것이다.) 세도정치가 강해지고 왕권이 무너지면서 안그래도 짜증났던 왕족들의 삶은 더욱 피폐해졌다. 과거 태종이나 세조처럼 로맨틱한 혁명적 야망을 꿈꿀 수도 없었을 것이다. 이빨을 보이면 어떻게 되는지 너무도 쉽게 추측되었을 터다. 이런 분위기가 순조-헌종-철종까지 이어지면서 흥선대원군이 할 수 있었던 일은 너무나도 뻔한 것이었.. 2015. 3. 2.
음모적 권력과 1212 12월 12일자 주요포털엔 검색어 '1212'가 상위권에 올랐다. 동시에 벌써 몇일째인지 모르겠으나, 1,2위엔 정윤회가 지속적으로 오르내리고 있다. 한국사회에서 권력의 5주체(박근혜, 김기춘, 박지만, 정윤회, 진돗개)의 실체에 대한 의문과 1212에 대한 관심은 음모론적 권력역사의 상당히 닮은 꼴이자, 역사의 어두운 부분이다. 김대중의 제일 앞을 보면 나름 민주주의에 대한 애정을 가진 장면 박사가 나오고, 노무현의 제일 앞을 보면 부산 민주화 운동의 대부 송기인 신부가 나오는데 반해 박근혜의 제일 앞을 보면 중인지 목사인지도 불분명한 최태민을 애써 불러내야 하고, 그와 관련된 정윤회를 끄집어내 권력5주체에 대한 해석을 시도해야 한다. 음모론적 권력이 판을 치던 7~80년대를 대상으로 다룬 인기작 김경.. 2014. 12. 30.
7.4 공동성명에 관한 소고 박근혜 정권은 이명박 정권에 비해 뭔가 통 큰 대북정책이 나올 줄 알았는데 정권교체기 정도에나 정상회담 이벤트가 나올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남북정상회담을 하면 결국 김정은과 사진을 찍어야 하는데 천상 엄마-아들뻘이라 도저히 그림이 나오지 않는 한계가 눈에 아른거린다. 황태성 간첩 사건으로 남북관계가 단절된 이후로 최대의 남북대화 분위기를 만들어냈던 7.4남북공동성명은 이후락 정보부장이 독약 샘플을 준비해갈 정도로 수가 틀리면 자결할 심산으로 대북접촉에 공을 들여 만들어낸 결과라는게 일반적인 관점이다. 정보부장이 민중의 통일열망을 효과적으로 조직했을 것이라고는 절대 믿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시초는 정보부발 기획작품이 맞지 않을까 한다. (북한을 끌어들여 남북대화의 물꼬를 터 박정희 정부를 남북통.. 2014. 8. 31.
김근태 선생에 대한 기억 김근태 선생의 장례식에서 있었던 일이다. 조그만 역할이라도 하고 싶어 빈소를 찾은 방문객들에게 자리를 안내하고, 음식을 나르기도 하던 찰나 매우 인상 깊은 장면을 보았다. 박근혜의 정중한 인사였다. 영정을 향해 깊이 고개를 숙이는 모습과 유족을 향한 짧은 메세지가 결코 가식이나 표면적인 인사치레 같지 않았다. 그 이후로 앞으로 살면서 목표가 하나 추가되었다면 그것은 반대의 위치에 있던 사람에게조차 인정받는 그런 삶을 살자는 것이었다. 오늘 책을 뒤적이다 우연히 조광조의 삶을 지켜보게 되었다. 그 시대에는 가장 기개있던 그의 삶 끝자락을 보니 정적도 그의 죽음을 진실로 안타까워 하는 모습을 보며 문득 김근태 선생의 삶이 생각났다. 자신을 세우는 많은 글을 남겨진 않았지만 아마도 수백년 전 사약을 마시고 죽.. 2013. 5. 25.
다시, 하방운동이다 하방운동. 중국의 모택동이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후 지나치게 집중된 중앙정치의 관료적 폐단을 극복하고, 지역에서부터 생활정치를 실천하기 위해, 당의 청년들을 지역 현장에 보내 정신, 육체 노동을 하게 함으로서 관료주의의 폐단을 막고, 당을 지역에 뿌리 내리게 한 운동을 말한다. 이 하방운동을 통해 모택동은 당내에서 자신을 기초로 한 권력집중에 효과를 보기도 했지만, 어찌됐건 지역에서 성장한 청년들이 훗날 중국의 리더쉽을 형성하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 하방이란 뭇 어색한 단어는 개혁적이고 진보적인 정치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지금 우리 사회에서 무엇보다 필요한 개념 중의 하나다. 물론 하방이란 단어 자체가 갖고있는 편향적 역사성(좌편향성)과 선민성은 철저히 배제하되, 지금 우리사회를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합목.. 2013. 5.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