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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5월 16일의 교훈(1) 1961년 5월 16일의 교훈김동환의 view 2013/05/19 20:45 이시대 1961년 5월 16일의 교훈 52년 전 바로 오늘 일어난 5.16 군사쿠데타. 쿠데타인 것은 이미 역사적 평가로 규정되었기에 그에 대해선 왈가왈부 할 필요는 없겠다. 그보다는 이 쿠데타에 대응하는 민주진영의 '어리석음'은 평가해볼 문제기에 길지만 적어본다. 적어도 2회 이상 군사쿠데타가 발생할 것이란 정보를 입수하고도 당시 대통령 윤보선은 이를 왜 방치하고서도 모자라 쿠데타군이 '작업'을 시도했을때, 쿠데타를 진압하려던 이한림 1군 사령관에게 친서를 보내 이를 저지한 것일까. 그것은 민주당 내부의 분열상 때문이었다. 1960년 4.19의 혁명적 열기를 구체적인 성과로 가져간 것은 누구보다 민주당이었다. (이 내용은 20.. 2019. 1. 27.
음모적 권력과 1212 12월 12일자 주요포털엔 검색어 '1212'가 상위권에 올랐다. 동시에 벌써 몇일째인지 모르겠으나, 1,2위엔 정윤회가 지속적으로 오르내리고 있다. 한국사회에서 권력의 5주체(박근혜, 김기춘, 박지만, 정윤회, 진돗개)의 실체에 대한 의문과 1212에 대한 관심은 음모론적 권력역사의 상당히 닮은 꼴이자, 역사의 어두운 부분이다. 김대중의 제일 앞을 보면 나름 민주주의에 대한 애정을 가진 장면 박사가 나오고, 노무현의 제일 앞을 보면 부산 민주화 운동의 대부 송기인 신부가 나오는데 반해 박근혜의 제일 앞을 보면 중인지 목사인지도 불분명한 최태민을 애써 불러내야 하고, 그와 관련된 정윤회를 끄집어내 권력5주체에 대한 해석을 시도해야 한다. 음모론적 권력이 판을 치던 7~80년대를 대상으로 다룬 인기작 김경.. 2014. 12. 30.
1961년 5월 16일의 교훈 1961년 5월 16일의 교훈 52년 전 바로 오늘 일어난 5.16 군사쿠데타. 쿠데타인 것은 이미 역사적 평가로 규정되었기에 그에 대해선 왈가왈부 할 필요는 없겠다. 그보다는 이 쿠데타에 대응하는 민주진영의 '어리석음'은 평가해볼 문제기에 길지만 적어본다. 적어도 2회 이상 군사쿠데타가 발생할 것이란 정보를 입수하고도 당시 대통령 윤보선은 이를 왜 방치하고서도 모자라 쿠데타군이 '작업'을 시도했을때, 쿠데타를 진압하려던 이한림 1군 사령관에게 친서를 보내 이를 저지한 것일까. 그것은 민주당 내부의 분열상 때문이었다. 1960년 4.19의 혁명적 열기를 구체적인 성과로 가져간 것은 누구보다 민주당이었다. (이 내용은 2008년 촛불시위 이후 2010지방선거에서 명백히 재현된다)자유당의 철저한 몰락 속에 .. 2013. 5. 20.
<처절하게 독서하기> 조용수와 민족일보 조용수와 民族日報(원희복, 새누리, 2004) “언론인 수난의 비극, 조용수를 배우다.” 2008년 1월 16일 이목을 끄는 판결이 있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2부는 1961년 사형선고를 받고 12월 21일 형이 집행된 전 민족일보 사장 조용수에게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하였다. 이로서 47년에 걸친 유족들의 길고 긴 싸움, 그리고 그에게 씌어졌던 불명예가 1차적으로 씻겨 내렸다. 냉전의 땅에서 오로지 분단된 조국에 대한 아쉬움과 4.19 혁명 공간을 통일을 위한 기반으로 삼으려 했던 젊은 청년에게 세상은 너무나도 비정했다. 어디 그 뿐 만인가. 분단이 던져 준 절망감 앞에서 좌절했던 것은 이 땅의 양심세력 전체였다. 4.19 혁명이 ‘미완’ 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던 것은 4.19로 모아진 국민의 기대를.. 2013. 3. 20.
<희망을 주는 책 소개> 장면은 왜 수녀원에 숨어 있었나 간만에 책을 한권 소개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역사서, 정치서를 즐겨보는 편인데요 그중에서도 비교적 드러나지 않은 부분을 접할때에 호기심은 더욱 상승합니다 이런 특성 때문에 비사라던가 억눌린 자들에 대한 역사를 복원하는 책들은 시기를 막론하고 더 꼼꼼히 살펴봅니다 역사의 가정은 없다는 식상한 문구를 또한번 들먹이지만 가정만큼 호기심을 자극하는 요소도 없겠지요 암튼, 정일형 박사의 아들인 정대철씨가 쓴 '장면은 왜 수도원에 숨어있었나'는 현대사의 질곡에서 장면의 왜 그런 선택을 해서 박정희에게 쿠데타를 허용했나를 중심 테마로 다루고 있습니다 이승만 정권 시절부터 군부 쿠데타를 계획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은 이승만 대통령이 4.19로 물러난 이후에도 그 계획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드러난 계획의 심각성을.. 2013. 1.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