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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

<희망을 주는 책 소개> 김원봉 연구

by 이시대 2013. 1. 17.

 

<희망을 만드는 책 소개> 김원봉 연구

 

모처럼의 긴 설날은 한편으로 긴 생각을 가능하게 해준다.

그간 중국의 역사답사를 통해 취해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들을 타산하면서 조용히 방 한구석에서 쉬고 있던 염인호 교수의<김원봉 연구>를 펼쳐들었다.

 

몇 년 전인가 김삼웅 선생님의 <김원봉 평전>을 읽으며, 의열단의 빛나는 투쟁에 고무되어 흥분했던 기억과는 또 다르게 이른바 ‘김원봉 노선’이 가진 좌우합작과 통일전선운동은 얼마나 치열했으며 처절했는가를 명확히 확인할 수 있었다.

 

획일화된 이념의 틀에 갖혀, 역사를 사고(思考)하는 방법을 망각한 집단은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할 가능성이 크다. 때문에 망각의 역사, 패자의 역사를 부활시킴으로서 한발 더 전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게 된다. 그 교훈의 중심적인 인물이 해방정국에서 스러져 간 약산 김원봉 선생이라 볼 수 있겠다.

 

조선사회가 공리공론에 빠져 허덕일 때, ‘총과 폭탄을 쥐고 적진에 뛰어들었던’ 의열단에 가입한 청년 김원봉은 의열단에 대한 탄압의 과정 속에서 지도자로 부상하고, 전선을 중국 관내로 옮겨 기존의 의열투쟁에서 나타난 개별적이고, 열사적인 투쟁의 방법을 변환하여 민족혁명당을 창건하였다. 이어 항일무장투쟁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조선의용대’ 의 산파역에 이르기까지 실천으로 일관한 그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당시의 올바른 지도자상(象)을 그려낼 수 있다. 실제 임시정부가 좌우통일전선체라 부를 수 있음은 김구를 비롯한 보수파 지도자와 김원봉과 같은 혁신 청년들과의 연합이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러나 항일시기에 이렇듯 현란히 싸워왔던 지도자들이 국내의 해방정국에서 맞는 시련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독립운동가라는 틀에서의 이념대립과 파벌다툼은 집단이 갖고 있는 정파성으로 인해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치부한다 해도 독립운동과는 아무런 연고가 없는 사람들이 해방정국을 주도해나간 점은 이 땅의 자존심과도 어울리지 않는 일이었다.

 

딱 여기까지는 김원봉 선생에 대한 전적인 예우가 가능하다. 그러나 남, 북 분단정권 수립시기까지 김원봉 선생이 걸었던 좌, 우 합작, 남, 북 협상, 민주주의민족전선, 인민공화당은 모두 현실의 노선에서 패배하고 말았다. 그리고 남쪽에서의 테러위협에서 벗어나고, 45년 해방을 맞아 북쪽 지역으로 간 옛 동지들과의 연대성을 살리기 위해 결단한 북행(北行)은 결정적으로 그를 고립시키고 말았다. 이제 남한에서는 ‘망각의 기억’으로 강제되어야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망각의 기억은 북한에서도 역시 강제되었다. 아직도 김원봉 선생이 북한검열상 이후 무엇을 했는지, 또 언제 사망했는지조차 공개되어 있지 않다. 이것이 공개되는 날, 후손들이 잠시나마 그의 삶을 추모하는 길이 열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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