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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육4

김육과 노블리스 오블리제 김육과 노블리스 오블리제김동환의 view 2014/09/23 01:13 김동환 역사 속에서 의미있는 인물을 발견하는 것은 언제나 흥미로운 일이다. 잠시 조선 시기에 매우 드물게 나타난 개혁정치가 김육(1580~1658)의 행적을 좆아보자. 김육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라는 조선 초유의 사태를 거치며, 민생이 어떻게 도탄에 빠졌는지 목도할 수 있는 계기를 가질 수 있었다. 왜란과 호란에 대처해야 했던 집권층 전부가 같은 계기를 가졌지만 김육이 뛰어난 것은 '자신을 걸고' 개혁의 전면에 나섰다는 점일 것이다. 양란이 있었음에도 조선의 지배계층이 전복되지 못하고, 자기반성 없이 사대부의 공리공론이 다시금 재연되면서 민생을 구제할 주도세력이 형성되지 못한 '잔인한' 이때, 김육은 '대동법'라는 최대의 민생규휼 카.. 2019. 1. 29.
그래! 김육이다! 그래! 김육이다!김동환의 view 2014/12/05 00:28 김동환 약초 캐러 구름 뚫고 산 올라갔고 낚시한 뒤 달빛 안고 돌아왔었지. 나무하는 늙은이나 농사꾼들과 세월이 오래됨에 사귐 깊었고 가을 서리 내리면 추수 서둘고 봄비가 내릴 적엔 밭을 갈았지. 기묘사화에 연루된 집안의 내력으로 인해 명문가의 자손임에도 불구하고, 밑바닥 생활을 해야했던 김육은 잠곡으로 내려가 일반 서민의 생활을 '동지적' 입장에서 경험할 수 있었다. 그의 호가 잠곡이듯 잠곡에서의 생활은 김육의 정치를 결정하는데 매우 큰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대충 짓고 대충 갖춘 초가집에서 산에서 나무하여 숯을 굽고, 그것을 서울에 내다 팔아 생활했다. 잠곡에서 그는 진실되게 평민이었다. 공리공론과 관념의 영역에 있는 민생이 아닌 눈 앞에.. 2019. 1. 29.
그래! 김육이다 약초 캐러 구름 뚫고 산 올라갔고 낚시한 뒤 달빛 안고 돌아왔었지. 나무하는 늙은이나 농사꾼들과 세월이 오래됨에 사귐 깊었고 가을 서리 내리면 추수 서둘고 봄비가 내릴 적엔 밭을 갈았지. 기묘사화에 연루된 집안의 내력으로 인해 명문가의 자손임에도 불구하고, 밑바닥 생활을 해야했던 김육은 잠곡으로 내려가 일반 서민의 생활을 '동지적' 입장에서 경험할 수 있었다. 그의 호가 잠곡이듯 잠곡에서의 생활은 김육의 정치를 결정하는데 매우 큰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대충 짓고 대충 갖춘 초가집에서 산에서 나무하여 숯을 굽고, 그것을 서울에 내다 팔아 생활했다. 잠곡에서 그는 진실되게 평민이었다. 공리공론과 관념의 영역에 있는 민생이 아닌 눈 앞에 살아숨쉬는 민생의 현장에서 지내본 현장가였던 것이다. 조선을 대개혁의 .. 2014. 12. 30.
김육과 노블리스 오블리제 역사 속에서 의미있는 인물을 발견하는 것은 언제나 흥미로운 일이다. 잠시 조선 시기에 매우 드물게 나타난 개혁정치가 김육(1580~1658)의 행적을 좆아보자. 김육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라는 조선 초유의 사태를 거치며, 민생이 어떻게 도탄에 빠졌는지 목도할 수 있는 계기를 가질 수 있었다. 왜란과 호란에 대처해야 했던 집권층 전부가 같은 계기를 가졌지만 김육이 뛰어난 것은 '자신을 걸고' 개혁의 전면에 나섰다는 점일 것이다. 양란이 있었음에도 조선의 지배계층이 전복되지 못하고, 자기반성 없이 사대부의 공리공론이 다시금 재연되면서 민생을 구제할 주도세력이 형성되지 못한 '잔인한' 이때, 김육은 '대동법'라는 최대의 민생규휼 카드를 들고 나왔다. 양란을 거치면서도 공납의 폐해(방납)가 시정되지 않자, 농민.. 2014. 10.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