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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열2

가네코 아야코 가네코 아야코김동환의 view 2013/05/04 00:04 이시대 "박열과 함께라면 죽음도 오히려 만족히 여긴다" 1926년 3월 26일, 일본 황태자 히로히토의 결혼식에 폭탄을 던져 황태자를 비롯한 고관들을 살해했다는 '대역사건'으로 기소되어 사형을 언도받던 날 박열의 부인 가네코 아야코는 재판정에서 당당히 외쳤다. "재판장 수고했네" 그 아내의 남편인지라 조선인 아나키스트 박열 역시 사형을 언도받는 순간 만세를 외치며, 일본정부의 폭력성과 야만성을 죽음으로서 폭로할 생각이었다. 박열과 아야코는 1920년대 일본에서 활동하는 사회단체 '불령사'를 통해 서로간에 '혁명적 사랑' 을 나눴다. 아나키스트들의 사상적 유사성인지 폭력혁명에 대해 관대했고, 뭐랄까 죽음을 받아들이는 자세에 있어서도 '혁명적 자세.. 2019. 1. 27.
조봉암 연구를 읽고 조봉암이란 인물을 처음들어본다거나 그 정치적 행보를 아예 모른다거나 하진 않더라도, 이번 기회에 조봉암과 진보당의 노선을 다시 한번 살피고자 박태균의 '조봉암 연구'를 독해했다. 지난해 대법원은 비로서 진보당 사건이 조작사건이었음을 판명하고 조봉암에 대한 복권을 시도했다. 그 후로 진보진영 일각에서는 조봉암 노선을 공부하고, 사회민주주의를 당의 강령으로 재설정하려하는 시도들이 있던 만큼 '진보당 사건'은 현재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 강령과 노선을 기초하고, 이승만과 한민당, 민국당에 대항하는 선명 야당을 구축하려 한 조봉암 노선은 여전히 한국사회에서 제3지대 정당을 어떻게 건설해야 하는지 일정부분 시사하는 부분이 있다. 그 핵심에 이 빠질 수 없으나 이 페이지에서 서술하지는 않는다. 조봉암의 정치활.. 2014. 8.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