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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천보2

도서관-만주-레닌 그간 너무 반도사에만 치중하다보니 만주쪽의 흐름도 익혀봐야겠다 싶어 신주백 교수의 책을 집어들고 근처 도서관으로 나왔습니다. 만주가 대충 어디서 어디까지인지, 간도는 또 어디쯤인지, 목단강, 밀산, 훈춘, 청산리, 혜산진은 어디에 위치했는지 지리적으로 살펴본 후 청산리전투, 보천보습격, 자유시사변, 민생단사건, 반만주국항일투쟁의 맥락을 확인해보고자 합니다. 그나저나 읽는 책이 이렇다보니 도서관과 관련된 일화가 하나 떠오르는군요. 1915년 취리히 수피겔 거리에 있는 한 도서관. 조그맣고 땅달만한 한 사내는 어김없이 아침 9시에서 오후 6시까지 쉬지 않고 같은 자리에서 책을 읽었습니다. 구두 수선공 집에 세들어 사는 이 남자는 보잘 것 없는 식사와 후질그레한 의상 때문에 누구하나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습니다.. 2014. 8. 30.
<커버스토리> 백발의 장군 1937년 6월 4일, 갑산군에 속해있는 보천보의 한 숲자락. 중국과 조선의 경계에서는 일본과 치열한 전투를 전개해왔던 일군의 조선인 부대가 일본부대의 시야를 따돌리고 내륙 깊이 진을 치고 있었다. 동북항일연군 제2군 6사 병력 100명은 조선 내의 조국광복회 회원들과 미리 작전을 수립하고 숲속에 은폐한 채 지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밤 10시 칠흙 같은 밤, 잔뜩 긴장했으나 ‘조국해방’이라는 뚜렷한 목적을 가진 이들은 거침없이 갑산군의 주요 시설을 습격하였다. 그러나 이것을 전투로 해석했을 때는 형편없는 것이었다. 일본인 50여명, 조선인 1300여명의 조그만 마을의 습격에서 큰 성과를 거두기는 어려웠으리라. 이들은 일본 경찰 주재소, 우체국, 면사무소를 방화하고 습득한 다량의 화기를 들고 유유히 사라졌.. 2013. 3.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