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임진왜란2

김육과 노블리스 오블리제 역사 속에서 의미있는 인물을 발견하는 것은 언제나 흥미로운 일이다. 잠시 조선 시기에 매우 드물게 나타난 개혁정치가 김육(1580~1658)의 행적을 좆아보자. 김육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라는 조선 초유의 사태를 거치며, 민생이 어떻게 도탄에 빠졌는지 목도할 수 있는 계기를 가질 수 있었다. 왜란과 호란에 대처해야 했던 집권층 전부가 같은 계기를 가졌지만 김육이 뛰어난 것은 '자신을 걸고' 개혁의 전면에 나섰다는 점일 것이다. 양란이 있었음에도 조선의 지배계층이 전복되지 못하고, 자기반성 없이 사대부의 공리공론이 다시금 재연되면서 민생을 구제할 주도세력이 형성되지 못한 '잔인한' 이때, 김육은 '대동법'라는 최대의 민생규휼 카드를 들고 나왔다. 양란을 거치면서도 공납의 폐해(방납)가 시정되지 않자, 농민.. 2014. 10. 11.
<희망을 주는 책 소개> 우리 역사 속 왜? 우리 역사 속 왜? 란 책이 주는 문제의식을 공유하려합니다. 저자들의 면면을 보니 언제나 소장학자의 길을 걸어왔던 사람들로서 내용의 신뢰성이 높습니다. 각설하면 여러 꼭지 가운데서도 임진왜란을 보는 관점이 중요해보였습니다 임진왜란을 국난극복의 관점에만 서다보면 위정자들의 무책임이 가려진다고 합니다 충분히 대비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가한 정세인식을 했던 그들의 무능을 덮고 넘어가서는 안된다는 얘기. 그리고 1948년 여수 순천 사건 직후 이승만 정권은 김구와 한독당을 이 사건과 연결시켜 정치생명을 묻어버릴 계략을 보였다는 것으로 비춰볼때, 이승만 정권의 반대파 탄압이 얼마나 무차별적이었는지 설명이 가능하고 또 하나 따로 관심을 두지 않으면 언제 그런일이 있었냐고 물어보는 국민보도연맹사건을 주목함으로서.. 2013. 1.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