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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

<처절하게 독서하기> 수용소의 노래

by 이시대 2013. 3. 20.

 

 

 

수용소의 노래(강철환, 시대정신, 2005)

“북한 정치범 수용소에 대해 알아보다.”

2005년 6월 14일 미국 백악관 집무실 오벌 오피스, 얼마 전 한국의 대통령 노무현도 이 오벌 오피스에서 미국 대통령 조지 부시와 회담을 가진 것으로 알고 있다. 어쩌다 여기까지..곧 이어 백악관 비서실에서 보좌관이 나와 미국 대통령을 만나기 전의 기본 에티켓에 대해 얘기해주었다. 세계 최강국가, 어렸을 때는 이 세상에서 가장 흉악하고 악질적인 집단이 미국인줄 알고 있었다. 그것은 성장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미 제국주의는 조국통일을 방해책동하고, 끊임없이 공화국을 압살하려는 집단이었다. 군중집회에 수 없이 참가해 원수를 쳐부수자고 얼마나 외쳐댔던가. 그런데 지금 그 원수의 우두머리와 만난다. 물론 그때의 원수와 지금의 원수는 달라져있지만 말이다. 한때 북한의 정치범으로서 ‘요덕수용소’에 수감되어 10년을 지낸 강철환은 오피스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부시는 무려 40여분을 할애하며 그가 쓴 영어판 수기『평양의 어항』에 대해 언급하며 북한의 인권 상황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했다. 조금 악평을 깃들이자면 세상에서 누구보다 인권을 짓밟는 부시에게 북한의 인권 상황을 알려준 것이다. 강철환씨 입장에서는 부시에게 기대했을 법하다. 한국에 안착했을 때에는 ‘북한인권’이라는 의제가 잘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적의 적은 친구라 했던가. 부시에게는 터놓고 얘기하고 싶었을 것이다.

1968년 9월 18일 평양에서 태어난 그는 1977년 조총련 교토지부 상공회 회장을 지낸 할아버지가 민족반역죄로 국가안전보위부에 끌려감으로서 온 가족과 함께 어디론가 실려 갔다. 가족은 전 재산을 몰수당하고 10시간에 걸쳐 도착한 곳은 해발 1500미터 고지에 위치하고 동서남북이 모두 험준한 산맥으로 이뤄진 함경남도 요덕군 ‘조선인민경비대 2915부대’ 해외도주자, 체제 비판자, 민족반역자들로 수용된 ‘요덕 수용소’였다.

그 후 그는 그곳에서 학교를 다니며 피골이 상접한 동료 학급생들과 포악한 교원 밑에서 온갖 노동과 구타에 시달리며 수용소 생활을 하게 된다. 가금씩 들려오는 도주 소식에 도주가 성공적으로 이뤄지길 빌면서도 어김없이 며칠 뒤면 잡혔다는 말을 듣고 절망한 그곳이었다. 얻어맞을 각오를 하고 남새밭에 몰래 들어가 오이나 토마토, 참외 따위를 먹으며 그것을 ‘행복’한 추억이라고 기억하는 그곳에서 10여년을 보냈다. 아직도 자신의 할아버지가 왜 민족반역죄에 연루됐는지 몰랐던 청년은 충실한 수감자가 되기보다는 의문점이 앞섰던 것 같다. 대체 왜 우리가?

10년 만에 출소한 그는 요덕군에 거주하던 중 남한방송을 청취하고 김정일을 비난하는 발언으로 국가안전보위부에 재수감될 위기에 처하자 목숨을 건 탈출을 시도하게 된다. 압록강을 건너 중국으로 탈출, 1992년에 한국으로 입국한 그는 현재 조선일보 기자로 북한민주화운동본부의 공동대표로 활동하다 2005년 부시와 면담함으로서 북한인권운동의 기수로 떠올랐다. 현재는 북한전략센터 대표로 일하고 있다.

필자가 2004년 한, 중대학생 교류와 고구려 역사왜곡의 현장인 동북 3성을 다녀왔을 때, 현지 조선족 학생이 동북3성에 걸쳐 북한이탈주민이 많다고 했고, 대부분 경제사정으로 온다고 했던 것이 기억난다. 북한 통치체제를 반대하는 ‘정치범’은 별로 없다고 한 것을 보니 강철환씨와 같은 정치범은 그야말로 목숨을 걸었을 것이다. 가끔 북한 인권에 대한 토론을 하게 되면 북한의 인권 유린이 아예 없거나 대부분 날조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게 된다. 필자는 이러한 태도는 북한을 막무가내로 혐오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본다. 그런 태도로는 가면 갈수록 정말 북한의 상황이 끔찍이도 싫어 목숨을 걸고 이탈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는 이유에 대해 무신경하게 되고, 인도적 가치에 대한 이중 잦대가 생길 수밖에 없다

물론 현재 북한이 처한 어려움 속에서 ‘인권유린’에 대한 주장을 높여갈수록 오히려 북한은 체제의 결속을 다지기 위해 통제를 강화시킬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동의하지만 언제까지 ‘지불유예’적인 사고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누군가를 반대한다는 이유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상황이 발생한다는 것은 우리 역사 속에도 있지 않은가. 황장엽씨를 단순히 북한 권력에서 배제된 패배자라는 시각으로 냉대만 할 것이 아니라 정치적 반대 = 물리적 타격 이라는 북한 사회의 기형적 구조에 대해 사고하는 것을 놓쳐서는 안 된다. 기본적으로 사람은 사람이나 체제를 좋아할 수도 있고 싫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것은 황장엽씨를 포함한 정치적으로 유력한 인사들이 냉전세력의 둘레에만 갇혀 이들의 이익에만 충실히 대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위와 같은  주장으로 인해 자칫 냉전세력의 입장에 손을 들어줌으로서 통일을 가로막는 반민족적 행태를 하고 있다고 판단하지는 말자. 너무 깊게 상상하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고, 필자가 주장하고 싶은 것은 간단하다. 북한이탈주민들이 계속 늘어나는 상황 속에서 마음속으로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한 번 더 해보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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