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해전 '만주항일유적지' 답사를 다녀온 적이 있다.
굳이 만주에 국한하지 않고, 일제 학살 만행의 현장을 보존한 남경대학살기념관이라던가 무수한 혁명가들을 배출한 상해의 금릉대학, 남목청사건이 벌어진 장사 임시정부 등을 두루거쳐 끝무렵에는 중국혁명가들 중에서도 기여가 큰 사람들만 안장된 '팔보산혁명공동묘지'에 도착했는데, 여기서 당시 가이드를 하던 교수님은 '정율성' 이란 인물에 대해 처음으로 언급했다.
중국의 혁명을 완수하고 그 정세를 활용해 조선을 혁명한다는 논리로 중국공산당에 입당해 각종 스트라이크를 일으키거나, 국공내전에 참여한 한국인(조선인)들은 많지만 당시에는 팔로군 포병단장 '무정' 정도만 알고 있던 나는 작곡가 '정율성'이란 존재가 호기심이 닿아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
얼마 전 방문한 시진핑 중국국가 주석이 이 정율성을 거론하면서 '한중우호연대'의 필요성을 언급했다는 대목에서 세삼 중국인들의 기억 속에 정율성이 얼마나 크게 차지하는지 알게 되었다.
팔로군행진곡(중국인민해방군 군가)을 작곡한 정율성은 중국의 3대 음악가로도 잘알려져 있으며, 중국인구의 80%이상이 그의 음악을 알고 있다고 할 정도니 말은 다했다. 1914년 광주에서 태어난 촌사람치고는 엄청나게 성공한 것 아닌가. 또한 정율성은 작곡가일뿐만 아니라 유명한 항일단체 '의열단'을 통해 항일운동을 시작한 운동가이기도 하다.
다만 45년 해방 이후 중국공산당이 국공내전에서 승리한 후, 중국에서 활동한 상당수 사회주의 운동가들의 정세관이었던 '중국혁명 완수 후 조선혁명' 노선에 따라 북한정권에 복무한 한 이력으로 중국 10억 인구는 알지만 한국 5천만 인구는 모르는 사람으로 남겨져 있는게 다소 아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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