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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13

<커버스토리> 백발의 장군 1937년 6월 4일, 갑산군에 속해있는 보천보의 한 숲자락. 중국과 조선의 경계에서는 일본과 치열한 전투를 전개해왔던 일군의 조선인 부대가 일본부대의 시야를 따돌리고 내륙 깊이 진을 치고 있었다. 동북항일연군 제2군 6사 병력 100명은 조선 내의 조국광복회 회원들과 미리 작전을 수립하고 숲속에 은폐한 채 지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밤 10시 칠흙 같은 밤, 잔뜩 긴장했으나 ‘조국해방’이라는 뚜렷한 목적을 가진 이들은 거침없이 갑산군의 주요 시설을 습격하였다. 그러나 이것을 전투로 해석했을 때는 형편없는 것이었다. 일본인 50여명, 조선인 1300여명의 조그만 마을의 습격에서 큰 성과를 거두기는 어려웠으리라. 이들은 일본 경찰 주재소, 우체국, 면사무소를 방화하고 습득한 다량의 화기를 들고 유유히 사라졌.. 2013. 3. 23.
석정 윤세주 석정 윤세주 지난 근대정치 강의때 북한건설사를 언급하던 도중 북한정치사회를 주도하는 축들이 국내파(박헌영 등 남로당파) 갑산파(김일성등 만주빨치산파) 연안파(김두봉 등 중국연안 항일운동세력) 소련파 (허가이등)로 나열했는데 연안파의 구성과 활동이 궁금해 제일 처음 생각 난 이름 윤세주 의열단 참여 이후 중국으로 건너가 조선의용대를 조직한 최고의 조직이론가라는 평가와 더불어 일본 정규군 4만명과 대치해 태항산에서 전사한 이 투사의 삶을 찾아보려 했는데 도통 정보가 안나옴. 도서는 없는것 같은데 혹시 좋은 자료 있음 공유 부탁드립니다^^ 2013. 3. 11.
<처절하게 독서하기> 백범일지 백범일지』(도진순 주해, 돌베개, 2006) “김구 선생은 기억과 찬양으로서만 존재해야 할 것인가.” # 2009년 11월 21일 짓 굳은 날씨였지만 300여명이 모였다. 모두는 감동과 환희에 젖어있었고 웃음꽃이 활짝 피고 있었다. 축복스런 날이었다. 친일이 애국으로 변신하기엔 너무나 금방이었고, 항일투사는 다시 비적때로 몰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린 통탄할 우리네 역사가 오늘로 하여금 무언가 새로운 전환점이 될 것 같았다. 그곳은 백범 김구 선생 묘소 앞이었다. #백범 김구 선생의 묘소 앞에는 3질의 책이 놓여있었다. ‘친일인명사전’, 평생을 조국의 독립에 헌신하다 안두희의 총탄에 스러진 백범 앞에, 아니 수 없이 많은 항일투사의 영전에 놓인 그 책은 지나간 왜곡의 역사를 이제나마 바로 잡기 위한 1.. 2013. 2. 10.
<희망을 주는 책 소개> 경성트로이카 의 작가 안재성의 글은 상당히 오묘한 뒷 여운을 남긴다. 일제 하 조선사회의 항일운동의 역량은 '상황판단을 잘못하는' 민족주의적 운동가들이 아니라 오롯이 사회주의 혁명을 일으켜 일제를 타도하려 했던 국내파 사회주의자들이었다는 역사적 시각을 여실히 드러낸다. 그러나 이러한 시각은 그동안 정당성을 잃었던 주장에 불과한 것이었다. 분단 후 갈곳이 없어 대다수 북행을 결심한 남한 내 주요 사회주의자 그룹은 김일성이 북쪽을 장악하자 최대 정적으로 떠오르게 된다. 이는 상당한 권력투쟁의 소용돌이를 내재한 것이며, 결국 권력투쟁에서 승리한 만주빨치산파 김일성 지도부는 남로당 주요인사를 '미제의 고용간첩' 으로 숙청하였다. 그 이후 남로당의 역사적 지위는 형편없이 떨어져버렸다. 북한은 물론이요. 남한 정계에서도 가뜩이.. 2013. 1. 18.
<희망을 주는 책 소개> 북한 현대사 시리즈 아무래도 한국현대사의 기초를 이해하려는 작업을 하다보면 북한의 역사에도 관심이 생기는 법이다. 까짓 북한의 역사라고 해봐야 몇년이나 되나. 같은 조선인이라는 인식으로 500년을 살았는데 그 십분의 일이 되는 역사 이해못할게 뭐가 있겠나 싶어서 책을 이리저리 뒤져보는데 그 동안 너무 많이 달라진 건 확실한 것 같다. 와 마찬가지로 북한 현대사의 기초를 알 수 있게 해주는 로 시작한 북한 현대사 공부가 시작되었다. 북한 현대사는 누구의 관점이 딱히 일반적으로 인정받는지 잘 모르고 있던 날에, 우연히 이종석 박사(전 통일부 장관)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석, 박사 과정에서 노동신문 전체를 탐독하면서 공부했다는 이야기가 진실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으나 그 성실함은 대단하다 싶다 해서 찾은 는 이미 북한 역사 .. 2013. 1. 10.
<커버스토리> 우리 한번 만납시다! 1971년 8월 12일 최두선 대한적십자사 총재가 ‘남북이산가족찾기’를 제안하고 북한이 이를 수용함으로서 남북관계의 새로운 전기가 열렸다. 당시 미국과 중국의 핑퐁외교로 발생한 한반도 데당트 분위기는 이산가족찾기 행사로 더욱 훈풍이 불고 있었다. 바로 그 시간, 언론에 공개되지도 않은 비밀만남이 이뤄지고 있었다. 남북관계의 특수성과 첩보작전을 방불케 하는 치밀한 사전 각본에도 불구하고 비밀 만남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 남한의 대한적십자사 과장 정홍진은 내심 불안해 하고 있었다. 이내 11차례나 비밀 접촉이 있고난 3월 28일 정홍진은 이후락을 북한으로 보내는 데에 극적 합의를 보았다. 이후락이 올라간다는 것은 박정희 정권의 의중을 정확히 전달할 수 있는 동시에 미-중 간의 정보망을 벗어나 독자적인 한.. 2013. 1.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