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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시열4

홍국영과 소년 출세 홍국영과 소년 출세김동환의 view 2015/01/07 00:36 김동환 홍국영과 소년출세 뒤주에 8일이나 갖혔던 사도세자의 죽음은 그 방식에 있어 매우 경악할 만 했다. 영조가 취했던 이런식의 상황 설정은 신하들에게 있어 죽음을 둘러싼 해석과 이후의 행보를 결정하는데에 있어, 그 온도차이를 매우 심하게 벌려놓았다. 사도세자의 아들 정조가 즉위 일성으로 아버지의 신원을 엄포했을때, 이미 택군현상이 발생한 조선 정계에서 정조를 바라보는 시각이 극단을 달렸을 것이란 추측은 쉽게 가능하다. 하지만 정조는 비교적 집권 초반의 권력누수를 효과적으로 차단했는데, 이는 그의 비서실장 아니 특무실장 '홍국영'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정조 역시 이전의 강력한 군주의 권력운용 방식대로 왕권의 강화를 위해서는 외척의 발호를 .. 2019. 1. 29.
흥선대원군의 삶과 정치 흥선대원군의 삶과 정치김동환의 view 2015/03/23 00:33 김동환 -흥선대원군의 삶과 처세- 정조 사후 드러내놓고 정조의 통치에 반대하던 노론 벽파가 순조를 위시하여 정권을 장악했던 시기, 말이 전제주의 국가지 왕권은 무너지고 60년 안동김씨의 세도정치가 싹트고 있었다.(이 대목을 생각해보면 2년 전의 박근혜와 십상시 파동을 겪은 지금의 박근혜가 과연 같을까 싶다. Jp가 박근혜를 향해 '외로운 자리'라고 했을 때 아마 속으로 눈물이 콸콸 흘렀을 것이다.) 세도정치가 강해지고 왕권이 무너지면서 안그래도 짜증났던 왕족들의 삶은 더욱 피폐해졌다. 과거 태종이나 세조처럼 로맨틱한 혁명적 야망을 꿈꿀 수도 없었을 것이다. 이빨을 보이면 어떻게 되는지 너무도 쉽게 추측되었을 터다. 이런 분위기가 순조-.. 2019. 1. 29.
흥선대원군의 삶과 정치 -흥선대원군의 삶과 처세- 정조 사후 드러내놓고 정조의 통치에 반대하던 노론 벽파가 순조를 위시하여 정권을 장악했던 시기, 말이 전제주의 국가지 왕권은 무너지고 60년 안동김씨의 세도정치가 싹트고 있었다.(이 대목을 생각해보면 2년 전의 박근혜와 십상시 파동을 겪은 지금의 박근혜가 과연 같을까 싶다. Jp가 박근혜를 향해 '외로운 자리'라고 했을 때 아마 속으로 눈물이 콸콸 흘렀을 것이다.) 세도정치가 강해지고 왕권이 무너지면서 안그래도 짜증났던 왕족들의 삶은 더욱 피폐해졌다. 과거 태종이나 세조처럼 로맨틱한 혁명적 야망을 꿈꿀 수도 없었을 것이다. 이빨을 보이면 어떻게 되는지 너무도 쉽게 추측되었을 터다. 이런 분위기가 순조-헌종-철종까지 이어지면서 흥선대원군이 할 수 있었던 일은 너무나도 뻔한 것이었.. 2015. 3. 2.
김육과 노블리스 오블리제 역사 속에서 의미있는 인물을 발견하는 것은 언제나 흥미로운 일이다. 잠시 조선 시기에 매우 드물게 나타난 개혁정치가 김육(1580~1658)의 행적을 좆아보자. 김육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라는 조선 초유의 사태를 거치며, 민생이 어떻게 도탄에 빠졌는지 목도할 수 있는 계기를 가질 수 있었다. 왜란과 호란에 대처해야 했던 집권층 전부가 같은 계기를 가졌지만 김육이 뛰어난 것은 '자신을 걸고' 개혁의 전면에 나섰다는 점일 것이다. 양란이 있었음에도 조선의 지배계층이 전복되지 못하고, 자기반성 없이 사대부의 공리공론이 다시금 재연되면서 민생을 구제할 주도세력이 형성되지 못한 '잔인한' 이때, 김육은 '대동법'라는 최대의 민생규휼 카드를 들고 나왔다. 양란을 거치면서도 공납의 폐해(방납)가 시정되지 않자, 농민.. 2014. 10.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