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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환의 view

흥선대원군의 삶과 정치

by 이시대 2015. 3. 2.

 

-흥선대원군의 삶과 처세-


정조 사후 드러내놓고 정조의 통치에 반대하던 노론 벽파가 순조를 위시하여 정권을 장악했던 시기, 말이 전제주의 국가지 왕권은 무너지고 60년 안동김씨의 세도정치가 싹트고 있었다.(이 대목을 생각해보면 2년 전의 박근혜와 십상시 파동을 겪은 지금의 박근혜가 과연 같을까 싶다. Jp가 박근혜를 향해 '외로운 자리'라고 했을 때 아마 속으로 눈물이 콸콸 흘렀을 것이다.)


세도정치가 강해지고 왕권이 무너지면서 안그래도 짜증났던 왕족들의 삶은 더욱 피폐해졌다. 과거 태종이나 세조처럼 로맨틱한 혁명적 야망을 꿈꿀 수도 없었을 것이다. 이빨을 보이면 어떻게 되는지 너무도 쉽게 추측되었을 터다.


이런 분위기가 순조-헌종-철종까지 이어지면서 흥선대원군이 할 수 있었던 일은 너무나도 뻔한 것이었다. 너무 똑똑해서도 안되고, 욕심을 드러내지 않고 남들 이하로 평범하게 살아야했던 것은 생존을 위한 처세일 수 밖에 없었다. 행색이 얼마나 그랬으면 심지어 '상갓집 개'라는 모욕까지 들을 정도로 비루한 삶, 초라한 행색을 이어나가야 했다.


그러나, 하루 아침에 이 모든 상황이 뒤바뀌고 말았다.


철종이 후사없이 사망하면서 후계지명권을 거머쥔 신정왕후가 대원군과 결탁해 그의 아들을 왕위에 올리면서 대원군 자신은 상왕의 자리에 오른 것이다. 왕족을 비롯해 가능성 있는 모든 이들을 스크린했던 세도가에서는 한마디로 뒷통수를 까인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상갓집 개 소리를 듣던 그 대원군은 집권하자마자 노론의 정신적 지주였던 송시열의 만동묘를 비롯해 전국의 600여개 서원을 철폐하고 양반층에게 군역의 의무를 부과하는 호포제 등을 실시함으로서 누군가에게는 정말 재수없는 '계급정책'들을 재빨리 수행해버린다. 목숨걸지 않으면 이런일 할 수가 없다. 개혁정치의 사례로서 대원군을 버릴 수 없는 이유기도 하다.


비록 아들 고종과 며느리 민씨일가와의 권력투쟁 속에 영향력을 급격히 상실하게 되었지만, 그 과정 속에서도 왕권을 강화하려는 대원군의 노력에 의해 백수십년을 이어져 내려온 사림 기득권 역시 대타격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이런류의 내정개혁은 언제나 민심의 지지율을 동반하기에, 외세가 내정에 개입해 자신들의 정책을 이식하려 했을때도 대원군은 언제나 이용가치가 있었을만큼 상징적 영향력은 사망할 때까지 유지되고 있었다.

어제의 상갓집 개가 다음날 알고보니, 자신의 목줄을 쥐고 흔들어대고 있었을 줄이야.
문득 안도현의 시에서 그런 의미를 찾아본다.

안도현 <너에게 묻는다>

연탄재
발로
함부로
차지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지금 내 옆에서 병신처럼 웃고 있는 그 사람, 비루하고 천박하게 보이는 연탄재 같은 바로 그 사람이 언젠가 나의 목줄을 쥐고 흔들 뜨거울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 '상갓집 개' 흥선대원군은 바로 그런 실제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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