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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락2

7.4 공동성명에 관한 소고 박근혜 정권은 이명박 정권에 비해 뭔가 통 큰 대북정책이 나올 줄 알았는데 정권교체기 정도에나 정상회담 이벤트가 나올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남북정상회담을 하면 결국 김정은과 사진을 찍어야 하는데 천상 엄마-아들뻘이라 도저히 그림이 나오지 않는 한계가 눈에 아른거린다. 황태성 간첩 사건으로 남북관계가 단절된 이후로 최대의 남북대화 분위기를 만들어냈던 7.4남북공동성명은 이후락 정보부장이 독약 샘플을 준비해갈 정도로 수가 틀리면 자결할 심산으로 대북접촉에 공을 들여 만들어낸 결과라는게 일반적인 관점이다. 정보부장이 민중의 통일열망을 효과적으로 조직했을 것이라고는 절대 믿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시초는 정보부발 기획작품이 맞지 않을까 한다. (북한을 끌어들여 남북대화의 물꼬를 터 박정희 정부를 남북통.. 2014. 8. 31.
<커버스토리> 우리 한번 만납시다! 1971년 8월 12일 최두선 대한적십자사 총재가 ‘남북이산가족찾기’를 제안하고 북한이 이를 수용함으로서 남북관계의 새로운 전기가 열렸다. 당시 미국과 중국의 핑퐁외교로 발생한 한반도 데당트 분위기는 이산가족찾기 행사로 더욱 훈풍이 불고 있었다. 바로 그 시간, 언론에 공개되지도 않은 비밀만남이 이뤄지고 있었다. 남북관계의 특수성과 첩보작전을 방불케 하는 치밀한 사전 각본에도 불구하고 비밀 만남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 남한의 대한적십자사 과장 정홍진은 내심 불안해 하고 있었다. 이내 11차례나 비밀 접촉이 있고난 3월 28일 정홍진은 이후락을 북한으로 보내는 데에 극적 합의를 보았다. 이후락이 올라간다는 것은 박정희 정권의 의중을 정확히 전달할 수 있는 동시에 미-중 간의 정보망을 벗어나 독자적인 한.. 2013. 1.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