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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하3

비운의 민족주의자 최능진 -비운의 민족주의자 최능진- 여기 최능진이란 인물을 한번 살펴보자. 가끔은 서로 대립되는 두 인물을 동시에 조명하면 그 시대에 대한 사회상을 획득할 수 있기도 하다. 최능진은 1899년 평남에서 태어나 37년부터 평안도 운동계의 거두 도산 안창호와 함께 국내에서 독립운동을 시작했으며, 조직사건으로 2년의 옥고를 치룬 후 해방 직후 조만식과 함께 평남 건국준비위위원회에서 치안부장으로 활동하다 소련의 탄압을 피해 월남한 후 미군정 경찰관료로 취직한 보기 드문 이력의 소유자다. 건준-월남-미군정 하 경찰관료는 상당히 이해하기 어려운 조합이지만 추측건데 안창호와 조병옥의 관계 혹은 조병옥과 조만식의 관계망 속에서 최능진이 위치했던 것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해본다. 안창호, 조만식, 조병옥의 관계망 속에 있었다는 .. 2015. 3. 2.
민족지도자 장준하 선생님 편히 가시길 한국 현대 의문사 사건 중 1호로 분류되는 장준하 선생의 유골을 유족들이 공개했을 때, 왜 유족들이 의문사가 아닌지 확신할 수 있었던 것인지 알게되었다. 동시에 그로 대표되는 수많은 독립지사와 반독재투쟁의 선봉에 선 정치인들의 삶을 유추했을 때, 가슴이 뭉클거렸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바로 직전 해방정국의 혼란과 전쟁의 포화 속에서 죽어간 양심가들과 8~90년대 겪었던 선배들의 고초가 하나의 선으로 연결되어 있는 느낌이었다. 이 선을 가장 오랫동안 유지했던 것이 장준하 선생의 삶 아니었나 싶다. 41년 일본에 유학간 다른 많은이들처럼, 성전에 참여하라는 이광수, 김활란 등의 호소 속에서 학병에 강제징집 당한 것은 식민지 청년의 불행함이었다. 그럼에도 장준하 선생이 지도자로서 자격이 있다는 것은 철통같.. 2013. 3. 30.
<처절하게 독서하기> 장준하, 민족주의자의 길 장준하, 민족주의자의 길(박경수, 돌베개, 2005) “진정한 보수주의자의 표상, 장준하 선생” 1975년 8월 17일, 이날로 예정된 등산 계획은 날씨가 너무 더워 취소될 예정이었다. 16일 약간 늦은 오후에 그는 한통의 전화를 했다. 오래된 지인이자 한때 자신을 도와준 호림 산악회 회장 김용덕은 수화기를 들었다. 오랜만에 듣는 목소리도 잠시, 김용덕은 내일 등산을 가자고 제안을 했다. 오랜만에 바람을 쐬자는 것 이었다. 원래 내일 등산은 안하려던 생각이었지만 포천군 이동면 약사봉은 그리 험준하지 않아 가벼운 마음으로 다녀올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게 마지막 길이 될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었지만 말이다. 8월 17일 오전, 40여명의 일행이 약사봉 초입에 도착하여 약간의 휴식을 갖는 동안 그는 예전 선거.. 2013. 3.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