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이 국제사회에서 이름을 처음 드러낸 것은 불행하게도 중국과 일본, 러시아 그리고 역사적으로 아무런 관계가 없었던 미국에 의해서였다.
당시 전반적으로 ‘쇄국론’이 지배적이었던 조선사회에서 외부의 경제사회적 ‘침투’는 전통지배계층에게 매우 위협적 요인이었다. 미국에게 조선은 대 아시아 무역팽창의 기지로 인식되었고, 러시아의 남진을 효과적으로 저지해야 한다는 것이 미국의 전략적 판단이었다. 이러한 판단은 함포를 동원한 강제개항으로 연결되었으나 실패하고야 말았다.
미국은 이내 함포외교를 중단하고 청을 끌어들여 조선을 개항시키려 시도하기 시작했다. 때마침 청의 이홍장 역시 러시아의 남하가 미치고 올 파급을 우려해 미국을 한반도 내로 끌어오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또한 조선 사회 내에서도 새로운 흐름이 감지되고 있었다. 금서로까지 지정된 황준헌의 ‘조선책략’은 기존 쇄국정책의 문제점을 나열하고 러시아 남하를 저지하기 위해 친중, 결일, 연미를 외친 문제적 작품이었다.
고종 역시 시류에 어두운 편은 아니었다. 척사파들의 반대를 우려했음에도 비밀리에 대청 교섭을 통해 미국과 관련된 개항 사안을 전권 위임했다. 이렇게 등장한 것이 1922년 5월 22일 조미수호통상조약이다. 청의 1보 후퇴로 ‘조선은 청의 속국’이라는 속방 조항을 벗어난 최초의 쌍무적 조약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지만 그것이 실제 조선사회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는 판단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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