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8월 12일 최두선 대한적십자사 총재가 ‘남북이산가족찾기’를 제안하고 북한이 이를 수용함으로서 남북관계의 새로운 전기가 열렸다. 당시 미국과 중국의 핑퐁외교로 발생한 한반도 데당트 분위기는 이산가족찾기 행사로 더욱 훈풍이 불고 있었다.
바로 그 시간, 언론에 공개되지도 않은 비밀만남이 이뤄지고 있었다. 남북관계의 특수성과 첩보작전을 방불케 하는 치밀한 사전 각본에도 불구하고 비밀 만남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 남한의 대한적십자사 과장 정홍진은 내심 불안해 하고 있었다.
이내 11차례나 비밀 접촉이 있고난 3월 28일 정홍진은 이후락을 북한으로 보내는 데에 극적 합의를 보았다. 이후락이 올라간다는 것은 박정희 정권의 의중을 정확히 전달할 수 있는 동시에 미-중 간의 정보망을 벗어나 독자적인 한반도 구상을 하자는 양측의 의사를 내포한 것이다.
1972년 5월 2일 정홍진을 대동한 이후락은 극비리에 평양을 방문, 김일성과 만나 남, 북간에 얽혀있는 실타래를 풀고자 하였다. 만일에 대비해 준비한 청산가리도 언제든 사용할 수 있다는 듯 준비한 상태였다.
김일성은 뜻밖에도 과감한 액션을 취했다.
“과거는 과거고 다시는 남침을 하지 않겠다”
“1.21 사태는 자신이 지시한 것이 아니지만 박 대통령께 미안하다”
이 두가지 발언의 기본적 전제 위에서 이후락은 또다른 역사적 이벤트를 만들었다. 72년 7.4 남북공동 성명이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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