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 수난사, 정연주 사장은 또 어떤 싸움을 준비하는가.”
언론인들의 수난사가 이어지고 있다. 2008년 이후 직간접적으로 언론계를 떠나야 했던 이들을 봐야 하는 이유는 이를 통해 시대의 일면을 읽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적으로 인기 있던 MBC의 앵커가 돌연 자리에서 물러나고, KBS 사장이 쫓겨났다. 언론노조위원장은 펜을 든 게 아니라 팔을 우뚝 치켜세웠다. 역대 어느 정권이나 언론은 권력과의 관계가 불편한 것이 사실이지만 최근에는 유독 관계가 심상치 않아 보인다. 그런데 이 관계는 수평적 구조가 아니다. 옷을 벗어야 하는 것은 늘 언론인 아니었던가.
지난번엔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의 경우를 통해 언론인 수난사에 대한 이해를 해보고 싶었다. 사실 그전에도 조선 총독부의 언론통제 수법으로 감옥에 가야 했던 수많은 사례들을 통해 한국 땅의 언론인 수난사는 결코 짧지 않구나 생각하고 있었다. 크게 생각해서 김대중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 시대에도 역시 언론에 대한 탄압이 있었구나 하는 ‘기계적인 중립’ 까지 지켜보려 했지만 모든 것을 “그때는 어쩔 수 없었어.” 라는 상황논리로 합리화시킨다면 청년의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젠 마음에 어떤 편향에 대한 두려움, 객관에 대한 압박을 벗어던지고 과감히 편을 들어주는 방식이 솔직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까놓고 말해 언론 수난사의 성격과 파괴정도가 다 같은가? 그 중 한국에서 유신정권에 맞서 언론자유를 지키기 위해 앞장서다 1975년 강제 퇴직을 당한 언론인들의 모임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동아투위)’와 관련된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그 중 정연주 前 KBS사장은 ‘동아투위’의 막내였지만 핵심멤버로서 언론 자유를 위해 싸운 인물이다. 최근에는 KBS사장 시절에서의 배임혐의로 고발당했지만 모두 무죄를 선고 받고, 다시 무언가 ‘싸움(?)’을 준비 중이다. 아! 이 사람이다. 지금 언론과 정부와의 역학관계에 있어서 상징성을 지닌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똑같은 언론인 수난이라고 하지만 유신정권에서의 언론운동은 퇴직과 감옥행, 더 나아가 목숨을 걸어야 했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 것이다. 동아일보 말고도 조선일보에서 ‘짤린’ 인사들의 대부분은 궂은 생업을 찾아야 했고 그 탄압은 십 수 년을 이어갔으니 말이다. 정연주 사장 역시 유신정권의 언론 통제에 반대하고 언론 자유를 사수하기 위해 싸우다 회사 밖으로 쫓겨났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긴급조치 9호를 위반한 대가로 수배 생활을 밥 먹듯 하고 유신정권이 끝나자마자 또 다시 새로운 수배를 살아야 했다. 결국 한국에서 제대로 된 생활을 할 수 없자 여기저기의 권유와 자신의 새로운 의지로 미국 유학을 가서 또 몇 년을 보내야 했다. 가족마저도 떨어져 있어야 하는 삶이 보통 마음고생이 되는 게 아니었다.
그렇게 고난스런 미국에서의 생활을 하던 중 87년, 신군부를 상대로 직선제를 이끌어 낸 한국에서 한겨레신문 창간이 준비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세상에 이 무슨 기쁜 소식인가. 발기인에는 자신과 함께 언론자유를 위해 싸웠던 인사들의 명단이 들어있었다. 한겨레신문의 발간은 언론인들의 힘으로만 이룩된 것이 아닌 이 땅의 양심들의 피와 땀의 결정체였다. 정연주 사장은 다시 펜을 잡을 수 있다는 기대와 설렘으로 미국 생활을 했고, 워싱턴특파원이라는 정식기자로 자신의 꿈을 십 수 년 만에 다시 이룰 수 있었다. 그에게 기자라는 것은 직이 아닌 업이었다.
민주화된 한국은 정말로 많이 달라져있었다. 언론과 권력과의 관계는 늘 불편했지만 그러한 긴장은 자연스러운 일로 되어 있었다. 적어도 정부를 비판한다고 옷을 벗어야할 이유들이 사라져갔다. 언론 자유를 위해 싸운 사람들의 노력이 결실을 맺었는지 너나 나나 당시의 투쟁이 정당하다고 외쳤다. 당시 그 싸움을 반대했던 사람들도, 신문사도 편승했던 것은 물론이다.
언론 자유라는 것이 하나의 시대적 사조로서 자리매김 하고 있는 현재에서 그러나 언론인 수난사라고 표현 해도 좋을 만큼 갑자기 세상이 이상해졌다. 언론인들이 옷을 벗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서 왜 정연주 사장이란 인물이 부각될까? 필자는 정연주 사장 개인에게 존재한다는 아들의 병역회피라는 일종의 ‘도덕성’ 문제가 그를 강제로 끌어내릴 수 있는 법적근거로서 작용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하고 한다. 또한 배임을 한 ‘파렴치범’으로 만들어 옷을 벗게 한 것 역시 다분히 조작임이 결론 났다. 그리고 이 문제를 단순히 개인으로만 환원시켜 보지 않는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고 무엇에 집중해야 하는가. 결국 정연주 사장은 독재정권에 의해 해임되고 수십 년 후 다시 새로운 권력에 의해 해임된 것이라 보면 지극히 주관적이라 할까?
『서울-워싱턴-평양』은 정연주 사장이 언론 자유를 외치게 된 배경과 과정 그리고 퇴사 이후의 활동을 자전적으로 정리하고 있는 책이다. 위에서 정연주 사장이 또 다른 싸움을 준비한다고 한 것은 이제 자신을 내몬 사람들에 의해서 여론이 장악되고 있기 때문이다. 장악된 여론은 분명 표현의 장을 왜곡하고 있다. 무언가 거꾸로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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