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가 있었다
인텔리 교육을 받고 내노라할 수재로 자랐던 그는 졸업다운 졸업은 한번도 못했지만 사회에 나오자마자 운동가의 길을 택했다. 그 뿐 만 아니라 당대의 많은 인텔리들이 유학을 다녀오고서도 국내로 들어와 공장으로 향하길 주저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곳에서 노동자의 권리에 대해 이야기했고, 하루 8시간 노동을 확보하기 위해 탄압에 노출되는 삶을 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규모 조직을 끊임없이 파생시켜 노조를 형성하고, 정치경제투쟁을 밀어붙였다. 상대는 지주집단이기도 했고, 일본인 공장주이기도 해서 노동운동은 동시에 항일운동이 되기도 했다.
1910~45년까지 이 사람(들)이 생각한 것은 당시로서는 신사조인 사회주의 국가건설이었고, 일제통치 하 근대식 교육을 받은 이 세대는 대게 사회주의 사조에서 비켜설 수 없었다. 그때 이 남자는 감옥에 잡혀가 기절할 정도로 고문 당하기도 했으며, 시골에 숨어 영락없는 농부의 모습을 띄기도 했고, 아는 교수의 마루바닥에 구덩이를 파 두더지처럼 지내야 했기도 했다. 왜 하필 그런 삶을!!
45년 해방이 오기 전 이 남자는 고문의 휴유증으로 숨졌지만 이 사람들은 가장 강한 소장집단이 되어 새로운 사회를 꿈꿨다. 그렇지만 국내에서는 큰 역할을 하지 않던 선배그룹에 밀려 주도권을 빼앗기고, 어둠의 역사로 묻혀버렸다.
이재유. 혁명적 노동운동의 지도자.
내 생각에 이재유와 같은 삶들은 1980년대에 대규모로 부활해 한국사회의 경제민주화를 이끌었다. 그들은 엘리트 집단이면서도 공장으로 들어가 손에 기름때 묻히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고, 기름때 묻힌만큼 정치와 경제의 민주화가 진행되었다. 나는 흔히 486이라 불리는 이 선배들이 지금 지식인 집단에 의해 평가 절하되고 모욕당하는 것이 못마땅하다. 누가 누굴.
한국사회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여전히 빠른 방법이 있다면, (사회의 큰 축이 흔들려버리지 않았다면) 머리속의 먹물을 씻어내고 사회 곳곳에 들어가 기름때 묻히기를 주저해서는 안된다.
'김동환의 view'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명분에 대하여 (0) | 2013.04.16 |
---|---|
북미대화 돌파구 미국이 열어줘야 (0) | 2013.04.16 |
정도전과 개혁 그리고 새로운 정치 (0) | 2013.04.03 |
민족지도자 장준하 선생님 편히 가시길 (0) | 2013.03.30 |
신뢰할만한 대북라인 확보가 필요하다 (0) | 2013.03.30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