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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환의 view

소수정예의 역사

by 이시대 2013. 4. 16.

# 1884년 서구의 문물을 접하고 실학을 성리학에 대체되는 사상으로 받아들인 개화파는 청나라에 기대 정권유지에 급급했던 민씨정권을 타도하고자 갑시정변을 일으켰다. 민씨정권을 악으로 규정한 급진개화파와 민씨 정권 하에서의 점진적 개혁을 주장한 온건개화파의 노선갈등이 존재했으나 격변기에는 늘 그렇듯 타협없이 선명한 그룹에 힘이 실리기 마련. 베트남과 프랑스 사이에 전쟁이 발생하자 조선에 주둔하던 청군 1500명이 파병나간 틈을 타 급진파는 쿠데타를 일으켰다. 정권을 장악한 김옥균, 박영효 등의 급진파는 조선 내 일본 주둔군의 호위 속에서 민씨 세력을 제거하고 정권을 장악, 그 유명한 14개 조 정강 1항에 청(중국)에 대한 사대를 끊을 것을 명문화 한다. 그때 이들의 나이대가 35~40 정도로 분포되어 있고, 


# 1919년 3.1 운동에 대한 여파로 일제에 의한 조선인 탄압이 대대적으로 발생하자 국내에 있던 독립운동가들은 대거 상해로 피신한다. 이때 미리 중국에 와있던 신규식을 비롯한 망명지사는 중국 신해혁명과 관련된 개혁인사들의 교감 속에서 임시정부를 구성해 국내, 미주, 러시아 등에 영향력을 발휘하고, 45년 입국 이전까지 정치적 대표성을 인정받았는데 이때 여기에 참가한 스무명 가량의 핵심인사들의 연령분포는 35~43세 정도. 


# 위와는 뉘앙스가 다르지만 1960년대 민주당의 신구파 파벌갈등과 혁신세력의 움직임에 위기를 느껴 쿠데타를 했다는 5.16 군사쿠데타는 육사8기의 진급불만과 박정희 개인의 권력욕이 결합된 사건. 이때 육사8기의 핵심주동자 김종필 및 동기생들의 나이는 34~36정도로 분포  


# 1980년 광주민중항쟁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일부 학생들은 졸업을 하지 않거나 졸업을 하더라도 직업운동가로 성장해 6월 항쟁의 산파가 됨. 이후 전대협을 조직하여, 정치경제의 민주화를 급격히 앞당김. 이때 간부들의 연령대 역시 30~35 


 역사는 이들 소수정예 그룹을 통해 급격한 변화를 맞이했다. 일일이 사례를 들 순 없지만 전 세계적으로 보더라도 이념, 조직, 실무등으로 잘 조직된 2~30명의 청년들이 시대를 재구성해 나간 것은 확실하다. 젊은 세대들의 분발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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