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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환의 view

1961년 5월 16일의 교훈

by 이시대 2013. 5. 20.

 

 

1961년 5월 16일의 교훈


52년 전 바로 오늘 일어난 5.16 군사쿠데타. 쿠데타인 것은 이미 역사적 평가로 규정되었기에 그에 대해선 왈가왈부 할 필요는 없겠다. 그보다는 이 쿠데타에 대응하는 민주진영의 '어리석음'은 평가해볼 문제기에
길지만 적어본다.

적어도 2회 이상 군사쿠데타가 발생할 것이란 정보를 입수하고도 당시 대통령 윤보선은 이를 왜 방치하고서도 모자라 쿠데타군이 '작업'을 시도했을때, 쿠데타를 진압하려던 이한림 1군 사령관에게 친서를 보내 이를 저지한 것일까.

그것은 민주당 내부의 분열상 때문이었다. 1960년 4.19의 혁명적 열기를 구체적인 성과로 가져간 것은 누구보다 민주당이었다. (이 내용은 2008년 촛불시위 이후 2010지방선거에서 명백히 재현된다)자유당의 철저한 몰락 속에 의회를 장악한 민주당은 오래되지 않아 큰 분열에 처했는데 이를 바라봐야 쿠데타군이 성공할 수 있었던 맥락을 볼 수 있다.

45년 한국민주당 창당이래 당을 운영한 윤보선을 중심으로 한 민주당 구파와 훗날 이승만에 대항하기 위해 새롭게 당에 들어온 장면을 중심으로 한 민주당 신파는 도저히 같은 당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반목이 심했다. 4.19 이후 정치주도권을 민주당이 장악한 후, 양파는 전당대회를 통해 당권장악에 각기 나섰는데, 미리 통과된 '내각제 개헌'으로 인해 대통령은 윤보선이, 총리는 장면이 당선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로 인해 주요내각은 모조리 신파가 가져갔으며 구파는 이에 격분, 따로 구파동지회를 만들어 분당해버렸다. 여기서 발생하는 분노와 증오는 얼마든지 예상가능한 것이다.

군사쿠데타군이 명분으로 내세운 민주당의 분열은 그런 것이었다. 따라서 쿠데타가 일어난 것을 알고도 '올 것이 왔구나'표현한 윤보선이 장면 내각을 타도하기 위해 쿠데타군을 지렛대 삼으려했다는 추측은 전혀 과도한 것이 아니다. 또한 실권을 장악한 장면이 칼멜 수녀원에 숨어버림으로서 쿠데타군은 시간을 벌게되었으니 국가를 농단하려는 이 수백의 결사집단 앞에 거대한 국가와 정규군은 보잘 것 없는 존재가 되버렸다. 윤보선은 자신도 구정치인으로 몰려 권력을 내려놔야 했을 때, 자신의 예측이 틀렸음을 깨달았을 것이다. 이게 얼마나 한심한 일인가. 그러나 이런 장면이 역사 속에서 꽤 자주 반복되는 것을 보면 역사는 늘 반복되는가보다.(라고 생각해야 마음이 편해진다)


'적당한'' 정의는 불의를 이기지 못하며,

'그저그런' 평화는 절대 목숨을 건 폭력을 이기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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