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와 권력은 진짜 비수와 같이 무서운 것 같다.
십상시들이 강력하게 실무를 장악한 것으로 추측되는 청와대가 '비선농단'이 단순 해프닝이었음을 대통령의 입으로 나오게 한 것과 문고리 권력 3인방을 홍수처럼 쏟아지는 비판의 여론 속에서도 끝까지 지켜내 '그룹을 보위' 하는 것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통합진보당 같은 '외부의' 거센 공격 '따위' 보다 비선농단이 훨씬 내상이 크다는 것을 고려하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고, 그 파동의 수위가 높을 수록 진짜 누군가를 죽음까지 이르게 할 수 있음을 보기도 했다.
사도세자의 삶을 본다.
아버지 영조가 택군으로 왕위에 오른만큼 노론 정파의 일방적 우위 속에서 소론에 경도해버린 사도세자의 정치적 입장은 결국 그의 삶을 앗아간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성격이 괴팍하다느니, 사람을 함부로 해친다느니 하는 것은 사실 향후 왕이 될 인물이 죽어야 할 요인은 당연히 아니었을 것이다. 그보단 세도세자가 즉위 할 경우 소론의 집권과 그 뒤에 있을 청산이 두려웠을 것이다. 당시의 정치갈등이란 사화, 환국, 정변에서 보듯 패배=죽음 이란 공식이 썩 맞아떨어졌기에 사도세자=소론 이란 공식은 집권주류 노론에게 엄청난 공포였을터다.
이인좌의 난과 나주 벽서 사건 등 노론의 명분에 대타격을 줬던 사건들은 집권을 했음에도 노론이 소론을 의심하고 거리감을 넓히는 데 영향을 주었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렇게 출산을 기다리고 기다렸던 아들을 앞장서 죽인 '탕평의 왕' 영조가 그럼 사이코패스인가? 탕평은 그만큼 왕권이 불안정한 데 대한 반증이었다. 결국 권력은 속성 상 다 해쳐먹기 위해 노론 위주로 원사이드하게 추구됐을 것이고, 사도세자는 그 제물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끝내는 만고에 없던 사변에 이르고, 백발이 성성한 아비로 하여금 만고에 없던 짓을 저지르게 하였단 말인가?"
영조는 사도세자를 향한 이 짤막한 묘비명을 쓰면서 몇날 며칠을 고민했을터다.
측근이었던 노론의 핵심도 어차피 하나 둘 사라지게 마련이고, 어제와 오늘의 환경은 또 달라지고 있었다. 날이 갈수록 깨닫게 되는 것은 결국 권력의 비수에 의해 희생당한 자기의 아들에 대한 안타까움이자 그 피를 자신이 묻혔다는 한스러움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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