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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ical view

<커버스토리>영화 '암살', 김원봉을 재조명하다

by 이시대 2015. 8. 5.

 

 

 

"일제가 가장 두려워 한 독립운동가 약산 김원봉"


영화 '암살'을 보다보면 조승우가 연기한 김원봉의 모습이 인상깊다. 다른 독립운동가들의 모습과는 다르게 언제나 '스타일 구기지 않는' 모습으로 작전을 전개하고, 거인의 풍모를 지닌 김구와도 동반자적인 협력관계를 보이는 모습을 보건데 위상 또한 만만치 않아보인다.

실제로 님웨일즈가 자신의 책 '아리랑'에서 의열단원들의 생활을 묘사했을때, "그들은(의열단원) 언제나 죽음을 앞두고 있었음으로 어떤 경우에도 결벽할 정도 말쑥하게 차려입었다"고 서술한 것으로 보아 의열단을 조직한 '대장' 김원봉의 사생관이 영화에도 잘 반영된 것 아닌가 싶다.

그러나 영화를 보면서 주목한 것은 이런 스타일리스트로서의 의열단과 김원봉이 아니라 1930년대 중국에서 그가 차지하고 있던 정치적 위상은 무엇인가에 있다.

협력자로 표현된 김구계통의 고수파 임시정부가 1923년 '국민대표회의'의 실패로 인해 독립운동선상에서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표류할 때, 의열단은 여전히 '암살, 파괴'를 계획하며 혁명적 의식을 지닌 청년들에게 '김원봉'의 이름은 각인되고 있었다.

독립운동계의 이러한 세대교체적 흐름은 자연스럽게 김원봉에게 많은 역할들을 요구하게 되었는데, 흔히 독립운동의 '통일전선'이라 불리우는 '한국대일전선통일동맹(1933년)'과 이 조직이 발전한 '민족혁명당(1935년)'에서 최고지도자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중국 내에서 상이한 정세판단으로 각자의 노선을 유지한 '민족주의 좌,우파' 세력들이 33년에 드디어 손을 잡고 공동으로 암살을 계획했다는 이 '상상력' 이 제법 고증된 기반에서 나왔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어찌 되었건 이후에도 중국에서 임시정부의 독립운동사가 완전 후지게만 보이지 않는 것도 김원봉을 위시한 '세대적으로' 구분되는 소장파 그룹이 임시정부에 참여해 임시정부의 '무력'까지도 충원함으로서 정부 기능을 상당부분 정상화 한 것에서도 이유를 찾을 수 있기 때문에, 임시정부의 정신을 계승한다는 대한민국은 적어도 이때까지의 역할을 폄훼하려해서는 안된다.

문제는 해방정국이다.

거물 김원봉이 악질 친일경찰 노덕술따위에게 고초를 당해 북으로 향했다는 설명이 많긴 하지만(영화와는 별개로) 북한 내각에 한때 김원봉의 사람들로 구성된 '독립동맹계'의 인사들이 상당히 포진된 것도 그에겐 친일세력의 상당수가 정치상층에 편입된 남한정세보다 매력적으로 비춰졌을 가능성이 크다. 그 한 타이밍, 한 끗의 판단이 김원봉의 역사성을 온전히 복구시키는데 장애가 되어버렸다. 그렇게 일제가 가장 두려워 했던 남자의 삶은 망각이 강요된 채 부분부분으로서만 부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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