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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환의 view

유영익과 이승만 살리기2

by 이시대 2019. 1. 29.

유영익과 이승만 살리기2

김동환의 view 2013/10/03 00:17 이시대




지난 번 '유영익과 이승만'을 다룬 글을 두고, 투박하다는 의견이 있어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해봤다.

기실, 그 시기 명백한 친일활동과는 거리가 있던 이승만을 두고 자로 잰 듯 매국의 흐름에 선두에 있었던 것처럼 표현한 부분에 대해 먼저 반성하는 마음을 갖는다. 누구나 그렇듯 어떤 사람의 행위 자체는 행위를 할 그 당시 결과를 예측하기 힘들다는 점을 간과했던 것 같다. 해석은 보통 어떤 행위에 대한 동기와 과정, 결과를 통째로 놓고 보는 일이기 때문에 '사후평가'가 되지만, 즉각적 판단이 필요한 당시의 복잡한 환경속에서 내리는 정치인의 행위를 한면으로만 규정해서는 안된다는 평범한 사실을 깨닫는다.

지난 글은 정치서적이 아닌 교과서를 두고 이승만을 과하게 부풀린데에 대한 반감이 크게 작용했던 것 같다.

가장 크게 내가 오류라고 생각한 부분은 단정운동에 관한 것이다. 이 운동을 투박하게 해석하면, 이승만은 과거 친일집단+보수적 민족주의 집단과의 제휴로 분단국가로 만드는데 1등 공신이 됨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당시 미-소가 제휴하던 단계인 '미소공동위원회'가 결정적으로 파괴된 계기가 되었던 '트루먼 독트린'을 염두에 두지 않으면 안된다. 당시 정세상 미소의 제휴가 성공해 모스크바3상 회의의 결의에 따라 통일임시정부가 수립되고 그 수반으로 김규식, 여운형이 되었다면 이승만으로서는 아무리 권력욕이 강하다한들 통일정부의 수반은 커녕, 그간의 단정운동으로 인해 꼼작없이 매국노가 될 수 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승만이 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그리 다양하지 못할 수 밖에 없었다.

두번째는 독립운동사상에서 그가 남긴 자취에 관한 것이다. 지난 글에서는 과연 그가 한 게 무엇이었나 하는 부분인데,  독립운동의 여러 노선 속에서 외교론을 살펴본 바 과연 외교론이 남긴게 무엇이었나 하는 질문을 하게 된 것이다. 이는 자칫 정파관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당시 항일의병운동의 입장에서 이를 보면, 말장난 하는 것 같을 수 있고, 만주군사운동의 차원에서 봐도 비슷한 해석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사실 당시 '외교'가 가진 함의는 대단히 컸다. '파리강화회의'나 '워싱턴회의'에 운동가들이 걸었던 기대는 어떤 것이었으며, 가까운 중국의 국공합작이 끼친 영향은 또 얼마나 큰 것이었나. 이승만의 타고난 엘리트의식과 권력욕은 세계 최강대국 미국을 상대로하는 외교전략에 초점이 맞춰있었고, (물론 그 과정에서 미국에 위임통치청원이란 큰 실책을 남기긴했다) 해방 이전까지 줄곧 미국에 거주하며 그런 사고를 유지했다. 그런 사람에게 왜 만주식으로 실천하지 않는가 묻는다면 말은 될지언정, 적절한 물음은 아닌 것이다.

또한 친미반러 사상에 대한 고찰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이승만의 정치참여의 계기가 출세관에 있었다는 사실 자체를 비난해서는 안된다. 아무리 엄중한 시국이라도 입신양명이 미풍양속으로 여겨지던 시기에 자신을 뽐내건 가정을 일으키건 개인적 목표가 중요할 수 밖에 없는 것 아닌가. 이런 경로로 당시 선각자들과 정치개혁의 일환으로 참여한 독립협회는 나라의 존망이 걸린 상황속에서 집권자들의 사대성과 무능을 타개하기 위해 일본식의 개혁을 차입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이들은 대게 신식교육을 받은 당대의 엘리트들이었으며, 이 교육과정에 기독교가 끼친 영향은 이루말할 수 없다. 어찌보면, 친미친일의 정치사상관을 유지하다 병탄 이후에는 한반도 정세에서 기댈 곳은 미국 밖에 없다는 판단은 이승만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다. 본격 사회주의가 유입된 러시아혁명 이전 조선사회 개화 엘리트들의 정치모델이 공화제였던만큼 미국식 민주주의는 선망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었다.

마지막, 이건 통계자료가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지만 이승만은 그의 행적이 모호했건 어쨌건 해방 이후 미군정에 의해 추대되고, 보수인사들 뿐만 아니라 좌파들도 그가 가진 대중적 영향력을 활용하고자 했을 정도로 신망이 있었다. 인민공화국은 꼭두각시건 어떻건 주석으로 내정했고, 그가 직접 조직한 독립촉성국민회 역시 우익뿐만 아니라 좌익도 가담하여 어느정도는 통일전선을 이룬바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혹평을 가했던 것은 긍정과 마이너스의 요소를 합했을때, 마이너스가 나온다는 주관적 견해를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살펴봐도 논쟁의 요소가 상당히 많은 것이 사실인데, 일방의 찬양이 앞선다면 그것은 교과서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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