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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ical view

김재봉과 3.1 운동

by 이시대 2019. 1. 29.

김재봉과 3.1 운동

김동환의 view 2015/03/21 00:27 김동환

-김재봉과 3.1운동-
나라를 잃었을 때의 슬픔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누구에게나 커다란 충격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충격을 딛고 한 발 내딛기 위해서는 더욱 많은 과정을 필요로 한다.

외교와 치안을 장악당한 한반도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그 전처럼 소시민적 개인으로 남아있으려면 사실 별로 할 것도 없다. 그러나 아픔을 개인적 차원으로만 환원시키는 것이 아니라 위기의 중심을 공동체로 놓고 구체적 행동을 보이는 순간, 인간은 위대해진다.

강제병탄 이후, 이에 저항하기 위한 흐름은 다양한 갈래로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열분에 찬 명망가들은 국내 저항을 포기하고, 해외로 망명을 한다던가, 의병대나 해산당한 군인들은 전선을 만주 이북으로 후퇴하여 '산사람'이 되는 것이 당시로서는 합리적인 판단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독립운동사의 주류는 대게 1911년 '데라우치 총독 암살미수사건'이라 불리는105인 사건 이후 중국과 미국 만주 등으로 망명한 명망가 집단에 대해 높은 점수를 쳐주고, 교과서는 이들에 초점을 맞춰 서술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해외에 나가지 않으면서도 국내에 남아 적극성을 펼친 운동사 역시 존재한다. 명망가들은 일제에 노출되어 이런 운동을 할 수 없었으니 자연스레 한반도에 '민중저항사'가 전개될 시공간이 주어진 것이다.

김재봉 역시 잘 조명되지 않은 '민중저항사'의 일원으로 우리 역사 어느 한켠에 남아있다. 1919년 3.1 운동의 적극적인 참가자이면서도, 윌슨의 민족자결주의보다 1917년의 제정 러시아의 붕괴를 더욱 중요하게 바라봤던 청년은 3.1 운동 이후 다가올 중요한 국면을 계급혁명으로 설정했던 것이다.

이들 김재봉, 윤자영, 김단야, 임원근, 박헌영, 강달영, 김철수, 고광수 등은 따라서 일본 제국의 자본주의와 통치기구에 대한 저항 방법으로 민중봉기를 모색하고, 일시 소련에서 밀봉교육을 받지만 그 저항의 무대는 언제나 한반도였고, 모진 탄압을 각오할 수 밖에 없었다. 혁명을 위해 노동조합을 만들고, 학교로 들어가고, 농민 속으로 들어가 조직을 확대해 스트라이크를 일으키는 등의 운동론은 비록 수류탄 투척같은 '의혈투쟁'은 아닐지언정, 해방 직전까지 일제의 지배망을 끊임없이 교란시키는데 큰 기여를 하게 되고, 우리는 마땅히 이 기여에 대해 주류사 못지 않은 가치를 부여할 필요가 있다.

3.1 운동 이후 김재봉은 1921년 조선독립단의 문서를 전달한 혐의로 검거되어 8개월을 복역한 후 소련으로 망명했다. 소련에서는 유명한 민족주의자로 알려진 김규식 역시 도움을 받고자 움직이고 있는 형편이니 망국 앞에서는 사상이니 뭐니 하는 것은 겉치레에 불과했음을 알 수 있다. 그 후 1923년 국내 혁명을 위해 입국해 비밀리에 꼬르뷰로(국제공산단 조선지부)를 조직하고, 위장취업을 위해 무려 '조선일보' 기자로 재직하며 국내에 혁명 지도부를 건설하려는 작업을 시도하게 된다.

이렇게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25년의 '조선공산당'이다. 화요파 위주의 구심 형성은 초기부터 이 조직이 '파벌'의 문제를 잉태한 것이라 평가되지만 당원들은 조직과 자신을 일치시킬 정도로 철통과 같은 규율을 유지했으며, 마치 혁명을 위해 태어난 것 처럼 일제 통치기구에 저항하는 역사를 후대에 남기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존재 자체가 일제에 협조해 배불리 살았던 많은 지배집단의 모럴해저드를 대립적으로 비교하게 만들어주고 있다.

김재봉은 이 조선공산당 조직에 대한 형벌로 28년 2월 경성지법에서 징역 6년을 선고 받고 복역했으며, 그 뒤로는 사회주의운동사에서 큰 역할을 하지 못하다 44년 3월 3일 사망하게 되지만 제1차 조선공산당 책임비서라는 역할만으로도 잊혀져서는 곤란한 인물이 되고야 말았다.

3.1 운동에 열심히 참여했으며, 혁명운동을 펼치다 해방 이전 숨이 다해 분단에 책임도 없는 사람을 우리는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그냥 빨갱이하고 끝낼 것인가. 결국 자신의 
도그마를 찾기 위해서라도 역사공부는 치열하게 해야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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