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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

<처절하게 독서하기> 군주열전을 통한 선조의 재해석

by 이시대 2019. 1. 29.

<처절하게 독서하기> 군주열전을 통한 선조의 재해석

처절하게 독서하기 2014/10/28 00:06 김동환





<우남 이승만, 대한민국을 세우다> 라는 책을 쓴 조선일보 이한우 기자의 필체를 처음 접했을 때는 당시 시대를 전달하는 저자의 시각이 굉장히 걍팍해서 괜히 조선일보 기자는 아니구나 하면서, 다시는 저자의 책을 읽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예컨데, 이승만을 상당한 위인으로 설정해 놓은 이후, 이에 반대하는 논리나 진영에 대해서는 가차없이 '좌파'의 딱지를 붙이는 극우의 논법을 그대로 사용한 느낌이 크게 들었다. 이런 논법을 그대로 채택하게 되면, 김구=테러리스트=좌파와 같은 논리 도출이 자연스럽게 되면서 역사 해석을 크게 왜곡할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이한우 기자의 글을 경계함이 마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위의 책과 비슷한 시기에 기자가 쓴 <군주열전>이 지금까지 호평을 받으면서, 얼떨결에 구해 읽다 어느덧 '선조편'까지 읽게 되었는데 나도 모르게 저자의 시각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었다.

수 많은 이순신과 관련된 저작들, 특히나 올해 크게 히트한 '명량'에서도 선조에 관한 직접적인 언급은 거의 없지만 이순신의 시각으로 당시를 보면 선조는 그야말로 무능과 안일주의의 극치를 보이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저자는 한가지를 꼭 짚고 넘어간다. "이순신은 전쟁의 부분이었고, 전체는 선조였다. 이 사실을 간과한 채 시대를 읽다보면 부분으로 전체를 판단하는 우를 범한다" 사실 이런 판단은 그 자체가 굉장한 도전적 문제제기다. 선조는 지금도 복권될 가치가 별로 없는 인물로 역사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비록 저자가 선조의 재빠른 파천과 요동망명 계획까지 변호하면서 선조를 복권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전쟁 경험 자체가 일천했던 지식인 선조가 동서분당이라는 집권세력의 분열과 그 안의 모함 속에서도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이순신을 '버리고 쓴 자체'를 놓쳐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정치인에 대한 판단과 장수에 대한 판단기준을 구별해 선조를 복권시킬 틈을 만들어놓고, 사실은 선조만큼 당시의 사림들이 훌륭한 군주로 여긴 왕들이 없다는 사례들을 제시함으로서, 나는 이한우의 관점에 어느덧 빠져들고 말았다.

특히 임진왜란 시 분조를 이끌며 실질적인 현장 사령관 역할을 하고 훗날 '중립외교'를 통해 조선을 위기에서 구한 '똑똑한' 광해군이 선조와는 국가경영에 있어 비교도 안되는 하수였다는 주장을 하며, 과제까지 던져준다. 덥썩 안 물 수가 없다.

마지막으로 선조가 이순신에게 보낸 사과문인 '기복수직교서'를 인용해 감성을 자극함으로서, 독자 한명의 시각은 어느정도 교정했다는 점에서 이한우 기자의 작업은 1단계 성공했다고도 볼 수 있다.




'尙何言哉 尙何言哉(상하언재 상하언재)'
'무슨 할 말이 있으리오, 무슨 할 말이 있으리오'

'그대의 직함을 갈고 그대로 하여금 백의종군하도록 하였던 것은 역시 이 사람의 모책이 어질지 못함에서 생긴 일이었거니와 그리하여 오늘 이 같이 패전의 욕됨을 만나게 된 것이라 무슨 할 말이 있으리오'

'이제 그대를 평복 입은 속에서 뛰어 올려 도로 옛날같이 전라좌수사 겸 충청전라경상 등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하노니 그대는 도임하는 날 먼저 부하들을 불러 어루만지고 흩어져 도망간 자들을 찾아다가 단결시켜 수군의 진영을 만들고 나아가 요해지를 지켜줄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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