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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일전선통일동맹2

<커버스토리>영화 '암살', 김원봉을 재조명하다 "일제가 가장 두려워 한 독립운동가 약산 김원봉" 영화 '암살'을 보다보면 조승우가 연기한 김원봉의 모습이 인상깊다. 다른 독립운동가들의 모습과는 다르게 언제나 '스타일 구기지 않는' 모습으로 작전을 전개하고, 거인의 풍모를 지닌 김구와도 동반자적인 협력관계를 보이는 모습을 보건데 위상 또한 만만치 않아보인다. 실제로 님웨일즈가 자신의 책 '아리랑'에서 의열단원들의 생활을 묘사했을때, "그들은(의열단원) 언제나 죽음을 앞두고 있었음으로 어떤 경우에도 결벽할 정도 말쑥하게 차려입었다"고 서술한 것으로 보아 의열단을 조직한 '대장' 김원봉의 사생관이 영화에도 잘 반영된 것 아닌가 싶다. 그러나 영화를 보면서 주목한 것은 이런 스타일리스트로서의 의열단과 김원봉이 아니라 1930년대 중국에서 그가 차지하고 있던.. 2015. 8. 5.
5.24조치 해제와 남북평화 1931년 일본의 만주 침략을 계기로 중국으로 망명한 운동가들의 논의가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상해에 위치한 임시정부는 이미 창조파, 개조파 논쟁 이후로 탄력을 잃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시작된 '민족유일당' 운동마저 사그러드는 시기에 등장한 호기였다. 당시 망명한 운동가들의 정세관이 '대외정세활용론', 그러니까 이 당시 일본의 대륙침략을 활용해 중국 내륙에서의 전선을 넓고 깊게 가져나간다던가, 훗날에는 미일개전을 염두에 두고 독립을 대비한다는 것은 자체의 무장력에 한계가 있던 운동가 집단의 일반적 인식이었다. 1932년에 가서 등장하는 '대일전선통일동맹'의 결성은 그런 정세를 활용하기 위한 조직적 움직임이었고, 이것이 발전한 것이 35년의 '조선민족혁명당'이다.민족혁명당은 정치, 경제, 교육의 평등을 기초.. 2014. 12.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