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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4

제가 민주당의 후보로 출마하는 이유 제가 민주당의 후보로 나서는 이유 지금은 외부환경이 많이 달라졌지만, 몇 주 전만 하더라도 심심치 않게 들었던 질문 중에 하나가 왜 굳이 민주당의 후보로 지방선거에 임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당시에는 당의 지지율이 10~15% 포인트 정도로 새누리당에 비해 3분의 1정도 수준에 머물렀던 상황이 지속되고 있었습니다. 아직 창당하지도 않은 안철수 신당의 지지율이 비록 조사기관마다 널뛰기 하고 있었지만 민주당에 앞서고 있었던 상황 속에서 왜 굳이 민주당의 후보로, 그것도 훌륭한 현역이 있는 지역에서 경선까지 시도해가면서 무리수를 두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위와 같은 논리에 대해 동의하면서도 결국엔 선택의 방향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제가 몸담고 있는 조직에 대한 예의이자 앞으로 이 정당을 통해 성장하고 .. 2014. 3. 18.
1961년 5월 16일의 교훈(2) 1961년 5월 16일의 교훈(2) 이번에는 또 하나의 민주세력인 ‘혁신세력’에 대한 성찰이다. 박정희와 8기 육사출신들은 민주당의 분열이나 혁신진영의 ‘평화통일’ 공세가 계기가 되어 쿠데타를 준비한 것이 아니라 분열이 가시화되기 이전, 혁신진영이 구체적인 조직으로 발전하기 이전인 1960년 4.19 직후 쿠데타를 모의했음이 여러 기록으로 남아있다. 본질은 권력 장악 ‘욕망’이다. 이 욕망에서 파생된 작전 앞에 대한민국의 국가 체계는 무릎을 꿇게 되었다. 그리고 이에 대응하는 민주당의 입장만 엉거주춤했던 것이 아니라 혁신진영의 당시 활동도 엉거주춤하기는 마찬가지다. 하긴 쿠데타군의 정보도 사전 노출을 그렇게 크게 했으니 허술한 것은 여기저기나 마찬가지기 때문에 결국은 한끝 차이의 판단이 상황을 가로질렀다.. 2013. 5. 20.
1961년 5월 16일의 교훈 1961년 5월 16일의 교훈 52년 전 바로 오늘 일어난 5.16 군사쿠데타. 쿠데타인 것은 이미 역사적 평가로 규정되었기에 그에 대해선 왈가왈부 할 필요는 없겠다. 그보다는 이 쿠데타에 대응하는 민주진영의 '어리석음'은 평가해볼 문제기에 길지만 적어본다. 적어도 2회 이상 군사쿠데타가 발생할 것이란 정보를 입수하고도 당시 대통령 윤보선은 이를 왜 방치하고서도 모자라 쿠데타군이 '작업'을 시도했을때, 쿠데타를 진압하려던 이한림 1군 사령관에게 친서를 보내 이를 저지한 것일까. 그것은 민주당 내부의 분열상 때문이었다. 1960년 4.19의 혁명적 열기를 구체적인 성과로 가져간 것은 누구보다 민주당이었다. (이 내용은 2008년 촛불시위 이후 2010지방선거에서 명백히 재현된다)자유당의 철저한 몰락 속에 .. 2013. 5. 20.
<처절하게 독서하기> 오자와이즘 오자와이즘 2009년 여름 중의원 선거에서 집권 여당인 자민당을 대파하고, 새로운 일본을 만들겠다던 오하토 체제(오자와-하토야마)가 8개월 만에 종식됐다. 취임 이전 핵심 공약이었던 후텐마 기지 이전 공약이 사실상 크게 후퇴하고 민주당의 정신적 지주인 오자와의 정치자금 스캔들이 붉어지면서 7월 앞둔 참의원 선거에 대한 우려가 당 안팎으로 확산되자 결국 동반퇴진을 결정한 것이다. 신임 간 나오토 총리는 새 내각을 오자와 파벌을 배제하는 듯 한 모습을 취했지만 오자와의 2선 퇴진은 ‘형식적’일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평이다. 일본 정치의 특성상 파벌 정치가 강력하게 작용하는 마당에 민주당 내 최대 계파인 오자와 파벌을 배제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자와가 갖고 있는 현실적인 영향력과 그가 바라보는.. 2013. 3.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