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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민족혁명당2

김규식과 조선민족혁명당 -김규식과 조선민족혁명당- 이름: 김규식 생년월일: 1881년 1월 29일 직업: 교육가, 고등교육 수료 구사 외국어: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러시아어, 중국어, 일본어 소속단체: 고려당 후보(고려공산당 이르쿠츠크파 후보당원)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자 영문학을 전공한 김규식 박사(이하 김규식, 모든 인물 존칭 생략)는 1922년 1월 21일부터 2월 2일까지 코민테른 집행위원회가 주최한 극동민족대회에 참석 차 모스크바에 머무르며 위와같은 프로필을 작성해 제출했다. 이 길은 결코 간단히 온 길이 아니었다. 기록이 뒷바침 되는 것은 아니지만, 1919년 1차 세계대전 전후 처리를 논의할 것으로 예정된 파리강회의에 대표단으로 파견될만큼 유창한 영어실력의 소유자이자 미국통이었던 그가 향후 냉전의 한축을 이룰 .. 2015. 4. 16.
5.24조치 해제와 남북평화 1931년 일본의 만주 침략을 계기로 중국으로 망명한 운동가들의 논의가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상해에 위치한 임시정부는 이미 창조파, 개조파 논쟁 이후로 탄력을 잃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시작된 '민족유일당' 운동마저 사그러드는 시기에 등장한 호기였다. 당시 망명한 운동가들의 정세관이 '대외정세활용론', 그러니까 이 당시 일본의 대륙침략을 활용해 중국 내륙에서의 전선을 넓고 깊게 가져나간다던가, 훗날에는 미일개전을 염두에 두고 독립을 대비한다는 것은 자체의 무장력에 한계가 있던 운동가 집단의 일반적 인식이었다. 1932년에 가서 등장하는 '대일전선통일동맹'의 결성은 그런 정세를 활용하기 위한 조직적 움직임이었고, 이것이 발전한 것이 35년의 '조선민족혁명당'이다.민족혁명당은 정치, 경제, 교육의 평등을 기초.. 2014. 12.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