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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선대원군3

흥선대원군의 삶 흥선대원군의 삶김동환의 view 2014/02/22 00:44 이시대 대원군의 삶을 들여다보고 있다. 예전에 대원군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척화에서 오는 고루함, 천주교 박해, 무리한 경복궁 중건에 따른 민중들의 삶의 피폐 등이었는데 역시 한 인물에 대한 삶을 함부러 재단해서는 안되는 모양이다. 서원 철폐와 호포제 실시, 세도정치 청산, 비변사 폐지는 그 당시에도 그렇게 느껴졌겠지만 지금봐도 개혁의 최고수준이다. 이렇게까지 할 수 있었던 것은 섭정기간에 단기간을 통해 쌓아올린 리더쉽이 단단히 한몫했음을 알 수 있다. 민중들은 그의 말을 신뢰했고 섭정 이후 고종 친정시기 찾아온 국란기마다 그의 역할이 요구되었다. 이런 정치에너지는 과연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과거를 보니 여실히 그 답이 나온다. 왕의 종친.. 2019. 1. 29.
흥선대원군의 삶과 정치 -흥선대원군의 삶과 처세- 정조 사후 드러내놓고 정조의 통치에 반대하던 노론 벽파가 순조를 위시하여 정권을 장악했던 시기, 말이 전제주의 국가지 왕권은 무너지고 60년 안동김씨의 세도정치가 싹트고 있었다.(이 대목을 생각해보면 2년 전의 박근혜와 십상시 파동을 겪은 지금의 박근혜가 과연 같을까 싶다. Jp가 박근혜를 향해 '외로운 자리'라고 했을 때 아마 속으로 눈물이 콸콸 흘렀을 것이다.) 세도정치가 강해지고 왕권이 무너지면서 안그래도 짜증났던 왕족들의 삶은 더욱 피폐해졌다. 과거 태종이나 세조처럼 로맨틱한 혁명적 야망을 꿈꿀 수도 없었을 것이다. 이빨을 보이면 어떻게 되는지 너무도 쉽게 추측되었을 터다. 이런 분위기가 순조-헌종-철종까지 이어지면서 흥선대원군이 할 수 있었던 일은 너무나도 뻔한 것이었.. 2015. 3. 2.
흥선대원군의 삶 대원군의 삶을 들여다보고 있다. 예전에 대원군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척화에서 오는 고루함, 천주교 박해, 무리한 경복궁 중건에 따른 민중들의 삶의 피폐 등이었는데 역시 한 인물에 대한 삶을 함부러 재단해서는 안되는 모양이다. 서원 철폐와 호포제 실시, 세도정치 청산, 비변사 폐지는 그 당시에도 그렇게 느껴졌겠지만 지금봐도 개혁의 최고수준이다. 이렇게까지 할 수 있었던 것은 섭정기간에 단기간을 통해 쌓아올린 리더쉽이 단단히 한몫했음을 알 수 있다. 민중들은 그의 말을 신뢰했고 섭정 이후 고종 친정시기 찾아온 국란기마다 그의 역할이 요구되었다. 이런 정치에너지는 과연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과거를 보니 여실히 그 답이 나온다. 왕의 종친들이 명예는 있으나 실권력을 가질 수 없었던 것은 대원군에게도 해당됐다.. 2014. 3.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