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독서 편력(遍歷)
대한민국엔 책벌레들이 엄청 많다는 것을 느낀다. 하기에 편력이라 제목을 달면 그야말로 편협한 독서량이 드러나는 판이니 조금 부끄럽지만 “어떤 독서를 주로 해야 할까”에 대한 고민이 많았던 것 같다. ‘1년에 100권 읽기’ 같은 카페에 가입해서 활동하다보면 정말 우악스럽게도 책을 많이 읽는 분들에게 조언을 구하다보면 닥치는 대로 읽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건 정말이지 시간을 죽이는 행위 같아 실행하기 어려웠다.
차분히 돌아다보니 나의 독서 대게 큰 유형을 그려왔다는 것을 발견한다. 1학년 때는 주로 처세서 중심의 독서와 2, 3학년 때는 평전, 군대에서는 책을 고를 자유가 제한되어 여기저기 정보를 챙겨두었다가 휴가가 되면 한 번에 구해오는 식이었는데 주제는 일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제대 후엔 주로 사회과학, 정치 영역에 대한 도서들이 대부분이었던바 굳이 어떤 경로를 설정하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독서하기에 녹아들어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도서는 사상(思想)하기가 가능한 책이다.
인간은 사상의 동물이다. 또한 이념의 동물이다. 사회가 갈수록 탈 이념화, 탈사상화 되어간다고 누군가 늘어놓지만 그것은 바로 인간성을 상실하고 있는 슬픈 태세를 나타냄이지 결코 그게 맞는 사회는 아니라는 것 일게다. 사상은 상상과도 일맥상통하다. 그것은 문자 그대로 풀이된다. 아니 되려 사상이 더욱 차원을 높인 단어이다. 누군가는 이야기한다. 시대는 점점 개성 있는 상상력을 요구한다고, 음? 그렇다. 탈이념, 탈사상화가 되어간다는 것 자체가 거짓말이다. 이것은 한국사회에서 누군가 조작해 낸 의도적인 결과물이다.
좋은 독서는 사상을 가능케 한다. 물론 기타 활동에 있어서도 가능하지만 한사람의 평생에 걸쳐 압축된 지적 결과물을 공유하게 될 때의 순간과는 차원을 달리한다. 그런 면에서 나의 최근 독서 편력은 모두 이 사상하기가 가능한 책들이었다. 좋은 책을 한권 읽고 났을 때는 그 여운이 일주일 이상 가는 적도 있다. ‘태백산맥’을 읽으며 느꼈던 그 인물과 그 감정은 고스란히 남아있되 예전 스티븐 코비의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을 읽으며 남았던 감정은 도무지 찾을 수가 없다.
사상하기의 최고봉은 단연 소설읽기라고 할 수 있겠지만 여러 가지 인문서적 역시 빼 놓을 수 없다. 신영복 선생의 글들을 읽어보시라. 세상에서 이렇게 행복할 때가 없다. 법정 스님의 책들을 보라. 세상이 이렇게 단아하고 아름다울 수 없다. 류시화씨의 책을 보라. 사랑이 그렇게 위대하고 아름다운지 모를 수 없다.
지금도 나는 정말 제대로 사상하기 위해 책을 붙잡고 있는지도 모른다. 효율과 실용을 떠나 사상을 통해 나의 존재를 찾아가는 일은 몇 곱절 힘든 까닭이다.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처절하게 독서하기> 전태일 평전 (0) | 2013.01.01 |
---|---|
<희망을 주는 책 소개> 햇볕정책을 위한 변론 (0) | 2012.12.30 |
<희망을 만드는 책 소개> 한국정당정치 실록 (0) | 2012.12.30 |
처절하게 독서하기에 부쳐.. (0) | 2012.12.27 |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 (0) | 2012.12.10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