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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

<처절하게 독서하기> 야만의 시대

by 이시대 2013. 3. 25.

 

 

 

야만의 시대(김성진, 황소자리, 2003)

“세계 속 분쟁의 현장을 가다.”

1. 티베트 분쟁의 현장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2009년 중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와 회동한다고 백악관 대변인이 밝혔다. 중국은 내심 불편한 심경이다. 2008년 달라이 라마는 프랑스를 방문해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을 접견할 예정이었는데 중국 정부 측의 항의로 프랑스는 접견 계획을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달라이 라마가 대체 누구 길래 중국은 그의 행보를 주시하는가.


2008년 3월, 티베트의 수도 라싸에서대규모 시위가 발생했다. 1959년 중국 인민해방군이 티베트에 진주한 후 벌써 수차례 일어난 대규모 시위였다. 티베트 망명정부가 시위에서 150여명의 사람이 죽고 1000여명이 부상당했다고 발표할 만큼 큰 시위였다. 티베트는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건국되고 모택동이 가장 먼저 침공, 강제 합병한 나라로서 경제적 가치로, 전략적 요충지로서 중국 당국에 선(先)조치 된 것이었다.

달라이 라마, 그는 하루라도 빨리 이 예속을 끊고 티베트가 독립된 국가로서 생활하기를 빌고 있었다. 깨끗하고, 조용하고, 평화로운 도시는 결코 어떠한 패권을 추구하지 않았다. 이웃 민족과 사이좋게 지내는 자주적인 국가로서 존재하면 그만인 것이다. 그러나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약소민족이 독립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국제 사회에 호소하는 것이었는데 티베트의 지도자로서, 그리고 세계의 영적 지도자로서의 달라이 라마 앞에 길목마다 지키고 있었던 것은 중국 당국이었다.

중국은 티베트인들의 저항이 있을 때마다 상상하기 힘든 탄압을 가해왔다. 현장 사살은 물론 납치, 고문이 이어져왔고, 극좌적 모험이라 평가되는 66년 문화대혁명 당시에는 불교 사원이 다수가 파괴되어 종교적 박해를, 89년 천안문 시위에서는 티베트만이 계엄령이 선포되었다. 인민을 위한 나라를 건설하겠다는 중국의 티베트 박해는 무슨 연유일까?

중국의 ‘동북공정(東北工程)’은 그 해답의 단초를 알 수 있는 키워드다. 설명하자면 완전한 하나의 중국을 만들기 위한 국가적 프로젝트로서 소수민족에 대한 통제를 격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티베트에서와 같은 독립 요구는 55개의 소수 민족으로 이뤄졌지만 한족이 장악한 중국 당국에는 너무나 위협적인 것이었으며 내적 분열이 심화되면 중화(中華)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가득하다. 고구려 역사 왜곡을 통해 한반도에서의 역사적 지분을 획득하려는 것과 티베트에 대한 탄압은 비슷한 노선상에 있다. 티베트인들의 저항이 낯설지만은 않은 이유다.


2.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현장

2001년 9월, 미국의 세계무역기구 건물이 비행기 테러로 무너졌다. 미국으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세계의 패권을 자랑하는 미국의 본토가 폭격 당한 것이다. 부시 행정부는 즉각 국가안전보장이사회를 소집하여 9.11테러의 배후를 조사하기 시작하였다. 한때 부시와 동지적 관계를 가졌던 오사마 빈 라덴이 즉각 지명되었고, 미국은 빈 라덴의 근거지를 제공하고 있다고 추정되는 아프가니스탄에 오사마 빈 라덴의 신병을 요구하였지만 거절당하였다.

10월 7일 세계 최강의 화력을 자랑하는 미국과 영국 공습기의 폭격에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은 순식간에 불타올랐다. 이슬람 근본주의로 무장한 악명 높은 탈레반 정권의 두 기둥, 무하마드 오마르와 오사마 빈 라덴은 도주하고, 친미과도정부 수반으로 하마드 카이자르가 선출되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저항군의 근거지는 사막으로 옮겨 가면서 오히려 전선은 확대되어가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단순히 9.11 테러에 대한 미국의 보복전쟁으로 설명하기엔 부족한 점이 너무나 많다. 그것은 진실의 한 단면이기 때문이다. 아프가니스탄의 입장에서는 소련 점령이 끝나자마자 발생한 내전, 그리고 승리한 탈레반 정부가 추구하던 이슬람 근본주의가 미국의 간섭과 지시를 받게 된 것이다. 무하마드 오마르와 오사마 빈라덴은 소련 점령 당시 미국의 아버지 부시에게서 군사적 도움을 받지 않았던가. 아들 부시는 9.11 테러 이전 오히려 반미(反美) 기치로 선회한 탈레반 정부를 부숴 아랍 진출의 교두보를 더욱 다지고 싶었을 것이다.



때문에 모든 전쟁이 다 그렇겠지만 특히나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성전(聖戰)이라든가, 정의의 전쟁으로 볼 수 없는 매우 다면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한국의 아프가니스탄 추가파병이 그래서 더욱 옹색한 것 아닐까? 선교라는 신성한 목적을 가지고 간 아프가니스탄에서 피랍된 샘물교회의 신도들의 어깨가 처져 보이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2004년 중국 ‘동북공정’의 현황을 직접 목격하러 동북 3성에 가 본적이 있었다. 그때 바라 본 중국의 패권 의식과 이라크,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미국의 패권 의식은 비슷한 것 아닐까? 저자가 '야만의 시대'를 통해 주목한 분쟁지역, 티베트의 상황과 아프가니스탄의 상황에서 한국의 어제와 오늘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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