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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

<처절하게 독서하기>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

by 이시대 2013. 3. 25.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데니지 파라나, 바다 출판사, 2004)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 브라질 대통령에게 배울 점은 무엇인가.”

 

 

2009년 4월 주요 20개국(G20) 회의장은 세계의 이목이 가장 집중되는 행사답게 전 세계의 외신들과 각 나라의 지도자들을 보좌하는 외교관, 그리고 안팎에 배치된 특수경찰들로 붐볐다. 이들 지도자들의 한마디 한마디는 모두 신문지면의 헤드라인에 오를 예정이다. 그 가운데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룰라) 브라질 대통령은 조금은 더 특별한 관심 속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얼마 전 미국의 대통령으로 당선된 오바마도 룰라에게 다정한 모습으로 먼저 다가갔고, 어쩌면 정치적 진로가 다른 프랑스의 사르코지 대통령도 룰라의 말에 동조하며 맞장구 쳐주고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인기가 많고 국민의 전폭적 지지를 받는 룰라 대통령은 그렇게 우리에게 비쳐지고 있다.

2002년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브라질은 남미 국가 중에서도 양극화가 심하고, 경제의 전반적인 침몰을 앞두고 있는 상태였다. 오랫동안 군부정권 하에, 그리고 극우파가 장악한 정권하에서 브라질은 부패가 만연하고, 이미 사회의 곳곳은 무정부주의의 흐름이 있었다. 우파도 나름대로의 국가 지도에 대한 걱정이 있었으며 좌파는 회의감으로 가득했다. 무언가 혁신을 해야 한다는 밑바닥 민심이 가장 집중된 곳에 바로 룰라가 있었다. 2002년 브라질, 현대 정치사 중 가장 요동치는 물결을 보여준 핵심에 그가 있었다. 1989년 브라질 노동자당(PT)의 이름으로, 30여년 만에 직선제 선거로 대통령 후보가 된 룰라는 94년, 98년 연이어 도전하지만 모두 패배하고 2002년 브라질 선거 역사상 가장 많은 득표율로 17대 대통령으로 당선되게 된다. 또한 2006년에는 재선에 성공함으로서 정치적 안정기를 맞고, 80%라는 경이적인 지지율을 보이면서 세계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대통령으로서 임기를 보내고 있다. 영국의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은 룰라의 당선을 “신선한 충격이자 다가오는 미래의 희망을 예고하는 21C 경사” 라고 표현하며 감탄한 바 있다. 브라질이 선택한 룰라는 어떤 인물인가.

1945년 브라질 북동부 지역 페르남부쿠의 빈민가에서 태어난 그는 이주민이자 소외된 계층의 아들로 태어남으로서 전형적인 브라질 빈민의 생활을 하게 된다. 브라질에는 역시 룰라와 같은 운명으로 살고 있는 전국 수백만의 빈곤한 가정이 있었다. 1956년엔 상파울루의 한 빈민가로 옮겨 그곳에서 형제들과 마찬가지로 땅콩, 타피오카, 오렌지 등을 팔았고, 10살이 넘어서는 전화교환원과 구두닦이로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다. 15세가 되는 해에 국가기술연구원의 지원 하에 3년 동안 공부하여 선반공 자격증을 획득 할 때는 지긋지긋한 가난의 어둠이 잠시 걷혀지는 듯했다. 그러나 이듬해 공장에서 새끼손가락을 절단 당한 그는 잠시 방황해야 했다. 어떻게 이런 그가 대통령이라는 지위까지 올라갈 수 있었을까?

대부분을 시련의 어린 시절로 보낸 그는 형 프레이 쉬쿠로부터 노조가입을 권유받고 망설이다 결국 노조 집행부로서 가입하게 된다. 이로서 룰라는 기존의 룰라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게 된다. 노조의 활동이 부(副)를 보장해주지는 않았지만 그는 더 큰 것을 얻게 된다. 비로소 수백만에 달하는 브라질 노동자들의 처지와 여건을 알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무렵 평생에 동반자가 될 아내 마리자를 만나게 된다.(첫 아내는 임신 9개월 만에 뱃속의 아이와 사망했다.) 룰라의 노조 활동은 사상적으로도 상당히 유연했던 것으로 보인다. 급진노선을 갖고 있던 브라질 공산당과는 일정 정도 거리를 두면서 끊임없이 노동자의 기초적 이해를 앞세웠던 것 같다. 훗날 노동자당(PT:중도좌파연합의 성격을 갖고 있는 정당)라고 불리는 조직을 주도한 것은 그러한 그의 정치적 사고와 관계가 있다.

룰라의 노조활동은 대중의 깊은 사랑을 받았다. 감정적으로도 지지를 받았으며 룰라 자체도 또 하나의 권력이 아닌 그냥 한 명의 노동자로서 자신을 위치 지으려 했다. 75년 10만 명의 노조원을 둔 브라질 금속노조 위원장이 된 그는 이제 전국적 인물이 되었다. 때문에 브라질 정권도 그를 요주의 인물로 보고 상파울루 대규모 시위의 핵심으로 지목하여 구속하였지만 오히려 룰라의 인기는 상승해갔다. 마침내 룰라는 83년 중앙노동자연합(CUT)이라는 대규모 노동자 연대조직을 창설하여 군부 정권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고 직선제 요구를 주장하는 정치 투쟁을 전개하기 시작한다. 현실정치라는 막강한 벽도 룰라를 지지하는 국민적 기대 앞에 무너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나 보다. 네 번을 대통령 선거에 도전한 끝에 결국 대통령직에 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룰라는 여전히 자신은 노동자의 영원한 친구라 얘기한다.

룰라의 당선 자체는 브라질의 혁신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초기 룰라는 좌파 대통령의 이미지답게 노동자 위주의 정책을 펼 줄 알았으나 의외로 기업을 중시하며 무너져가고 있는 국가의 경제상황을 타개하고 세계 속의 브라질의 이미지를 만들어나가려고 했다. 중도파의 의견을 받아들여 급진적인 개혁보단 점진적인 노선을 채택하였다. 물론 격렬한 좌파는 룰라가 지나치게 우향우한다고 비판했지만 일련의 점진적 조치가 국민들의 전반적 삶의 질을 높여주고 있었다. 국민의 기대와 열망은 룰라를 지지하는데 서슴지 않았다.

그 후 브라질의 경제는 눈부시게 발전하였다. 국제 사회에서 보내는 ‘좌파정부’라는 우려에 대응해 외채를 모두 상환하고 재정흑자율을 높이겠다고 발언함으로서 국제사회의 신뢰를 구축하는데 힘을 썼다. 또한 수출 위주의 경제 성장 방식을 택해 국가 간 경제의 영역도 다져나갔다. 이는 우파 집권에도 이룰 수 없는 공적으로서 좌파의 비관적 전망 역시 무참히 빗나가버린 것이었다. 물론 집권 중간기인 2005년 룰라는 일부 측근의 전횡으로 인생 최대의 고비를 맞았지만 국민들에게 솔직히 사과함으로서 오히려 지지기반이 다져지는 결과를 가져왔다. 2002년도에 다 무너질 줄 알았던 브라질은 2008년 외채를 모두 상환함으로서 기나긴 고통을 청산하는 수순을 밟고 있다.

자신은 영원히 노동자의 친구라 외치고 있는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 국민들은 진심으로 그 말을 믿고 있으며, 룰라를 중심으로 단결하고 있다. 거센 신자유주의의 위기가 전 세계를 휩쓰는 가운데서도 안정적인 모습을 하고 있는 브라질을 보며 우리는 무엇을 떠올려야 할까? 어쩌면 국가발전이라는 미명 하에 초국적 자본의 요구를 그대로 수용해 노동자들을 탄압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래저래 배울 게 많은 브라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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