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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

<처절하게 독서하기> 20세기 우리역사

by 이시대 2013. 3. 25.

 

 

 

『20세기 우리 역사』(강만길, 창작과비평사, 1999)

“역사 인식의 정립이 필요하다.”

역사를 공부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시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주제로 발표하는 수업이 있었다. 누구는 억눌린 소수자, 민중의 문제를 부각시켜야 한다는 입장이 있었고 누구는 국가 헤게모니를 장악한 엘리트들의 역사를 공부함으로서 역사를 바라보려는 시도가 있었다.

생각해보면 그때 필자가 한 발표는 지금 생각해도 조금은 민망스럽다. 분단의 문제와 통일의 문제로 귀결시킨 논조 그 자체는 보편적인 역사인식이지만 과감히 그 통일의 기점이 2008년도에는 발생할 것이란 주장을 폈다. 근거로는 당시 활발히 진행 중이었던 주한미군 재배치 작업, 그리고 2008년의 미국 대선이 한반도의 지각변동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것이라 봤던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조금 더 지나 이 주장을 다시 살펴봤을 때, 아직 공부가 너무나도 부족한 것 같아 부끄러웠다.

통일이 빨리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 자체는 유효할지라도 '어떤 통일‘인가는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위에서 발생한 실수는 첫째로 주한미군이 재배치되는 것은 남한 국민들의 의사와 별개로 진행되었고 이것은 미국의 군사전략 변화에 기인한 것이어서 설사 재배치가 성공적으로 이뤄진다한들 남, 북 화해의 분위기가 자연 발생적으로 형성되지는 않는다는 점, 둘째로 미국 대통령의 당선에 따라 한반도의 운명이 달려 있다는 지극히 비주체적인 사고방식이 있었다.

2010년이 된 지금, 통일은커녕 남, 북 화해모드마저 이상 신호를 보이고 있는 시점에서 다시 한 번 분단과 통일의 문제에 대해 고민할 필요를 느낀다. 전편에 소개했던 한홍구 교수의 『대한민국史』가 역사 안의 소수자 예컨대 양민학살 문제, 군의문사 문제 등 여태껏 조명되지 못한 역사에 대해 서술했다면 강만길 교수의『20세기 우리역사』는 한반도를 바라보는 큰 관점들 예컨대 반민족 세력의 진로, 분단에 대한 고찰, 근대화의 명암, 통일에 대한 인식들을 제시함으로서 역사의 흐름에 대해 고민할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특히나 이 책을 통해 가장 큰 인식의 변화를 한 것은 분단 이전의 독립운동의 상을 바로 잡은 것이었다. 기존에는 한국의 독립운동 현장을 ‘우파 민족주의자’들의 전유물인 것처럼 해석하여 그 귀결을 이승만 전 대통령과 김구 선생으로 압축하는 우를 범했었다. 그렇게 됐을 때는 자연스레 미주, 하와이의 독립운동과 상해 임시정부의 운동을 가장 크게 부각시키게 되는 것이다. 물론 가치 판단에 따라 그 흐름을 가장 크게 부각시킬 수도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 일어났던, 혹은 소련과 중국에서 일어났던 독립운동의 기본을 알지 못하고 하는 가치 판단은 늘 무게감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일전에의 공부를 통해본다면 1930년대와 40년대의 한국 독립운동의 현장을 해석하는 데 무리가 따른다. 이 시기 국내에서 활발히 독립운동을 전개한 그룹은 ‘사회주의’ 계열이었다. 비타협 민족주의자들을 제외한 상당수 많은 민족주의자들은 일제의 회유와 동시에 자발적 자세로 전향을 한 경우가 많았다. 그렇기에 민족운동의 관점에서만 역사를 바라볼 경우 이 시기의 한국 독립운동은 마치 말살된 것처럼 인식될 수 있다.

20세기 우리 역사는 분단 이전의 독립운동을 ‘통일전선’ 운동으로 바라보고 있다. 물론 분단 이후 북한의 통일전선 운동과는 성격이 다르다. 강의 제목으로 살펴보건 데 제 7강의 조선공산당운동도 민족해방운동의 일환입니다. 제 8강의 민족유일당 운동, 신간회 운동이 추진되었습니다. 제 11강의 임시정부는 좌우익 통일전선정부 입니다와 같이 전부 분단 이전 한국 독립운동 형태가 새의 양 날개와 같이 민족운동과 계급운동의 공동전선을 유지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이들 운동은 모두 해방 이전까지 치열하게 싸워온 애국운동이 확실하다.


(해방 후 환국한 임시정부 요인들, 임시정부는 좌, 우 통일전선체였다.)

 



일제에 대한 통일전선운동이 해방 후 각자의 요구와 이해에 따라 분립(分立)한 것이 분단의 내적 요인으로 작용한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지만 그 역사적 의의는 자못 중대한 것이다. 분단의 시기가 지속됨으로서 통일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발생하고 남과 북이 정치, 경제적으로 거리감이 넓어짐에 따라 남, 북 문제에 있어서 국민들은 갈수록 객체화되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시기엔 남, 북 문제를 6자 회담과 같은 틀로 축소화시켜 이해하려고 하는 ‘편의’들이 발생하고 만다. 오히려 이럴 때 역사 공부를 통해 분단과 통일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확장해야 할 필요가 있다. 과연 현재의 상황에서 과거와 같은 좌, 우 통일전선은 가능할까? 개성공단과 같은 남,북 경제협력, 6.15, 10.4 선언과 같은 정치적 협력은 바로 이러한 이런 가능성을 갖고 있는 것 아닌가.

우리는 어떤 통일된 사회를 만들어나가야 할까? 그것이 가능하기는 할까? 분단이 고착화되고 있는 현재 세대의 청년들에겐 과거보다 오히려 훨씬 어려운 고민들로 가득하다.

더 읽어보기
『고쳐 쓴 한국 현대사』(강만길, 창작과비평사, 1994)
『강만길 선생과 함께 생각하는 통일』(강만길, 지영사, 2000)
『역사는 변하고 만다』(강만길, 당대, 2003)
『우리 민족해방운동사』(강만길 외 지음, 역사비평사,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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