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이승만 정권 말기, 소모적이라 여겼던 7년 간의 군생활을 마치고 뒤늦게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를 고민하던 30세의 리영희는 도쿄의 한 서점에서 눈에 확 들어오는 책을 한권 발견했다.
부제가 '한 조선인 혁명가의 생애'로 적힌 이 책의 제목은 <아리랑의 노래>로서, '님 웨일즈'라는 미국인 여성 기자가 '혁명과 반동'의 요동 속에 놓여있던 중국 연안에서 한 조선인을 담아낸 기록이다.
그 조선인의 이름은 '김산(장지락)'이었고, 리영희는 <아리랑의 노래>를 통해 중국혁명을 위해 복무하고 있던 김산의 삶을 보면서, 그와 비슷한 처지에 있던 수 많은 조선인 혁명가들의 삶에 심취했고 상당히 긴 시간을 중국혁명에 대해 연구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런 사상적 여정은 분명 리영희가 한국에서 마오이즘을 전파하고, 베트남 전쟁에 대한 확연히 다른 해석을 내리는데 영향을 미쳤음이 분명하다.
리영희의 눈에 들어 국내에 소개된 '아리랑'은 시공간은 다르지만, 엇비슷한 혁명적 열기로 뒤덮였던 80년대 한국의 정치적 풍토에서 대단히 큰 히트를 쳤고, 고뇌하는 청년 학생들에게 사고의 지평을 넓혀주는 역할을 할 수 있었다. 간만에 이 책을 다시 뒤적이다 보니 '한국의 독립', '조선의 해방'을 위해 중국으로 간 혁명가들의 삶의 궤적을 좇은 기록 중 이만한 기록이 또 없음을 새삼 깨닫게 되었는데, 문득 과거 이 책에서 영감을 받았던 부분을 다시 찾아보게 되었다.
그것은 님 웨일즈가 연안에서 발견했던 의열단원들의 생활에 대한 부분이었다.
"의열단원들은 마치 특별한 신도처럼 생활하였고, 수영, 테니스, 그 밖의 운동을 통해 항상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도록 하였다. 매일같이 저격연습도 하였다. 이 젊은이들은 독서도 하였고, 쾌활함을 유지하기 위해 오락도 하였다. 그들의 생활은 명량함과 심각함이 기묘하게 혼합됐다. 언제나 죽음을 눈 앞에 두고 있었음으로 생명이 지속되는 한 마음껏 생활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기막히게 멋진 친구들이었다. 스포티한 멋진 양복을 입었고, 머리를 잘 손질하였으며, 어떤 경우에도 결벽할 정도로 말쑥하게 차려입었다." -7장, 때를 기다리는 사람들-
리영희가 미국인이었던 님 웨일즈가 망국인이었던 김산을 마음 속 깊이 사랑한다고 생각했을만큼, 그는(그들은) 멋진 사람(사람들)이었다. 당장 내일 죽을 것을 각오하며 오늘의 나를 늘 최상의 컨디션으로 유지했던 그런 운명론적 멋이 있었던 것이다.
규모가 크던 작던 세상을 바꾸려 하는 사람, 일상에서의 개혁을 추진하는 사람은 이렇듯 멋이 있어야 함을 다시금 확인한다. 오늘날 개혁진영(이란게있나?)이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는 것도 사실은 '사즉생'의 멋, 자기 신념에 대한 견결한 자신감에서 오는 멋이 없어서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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