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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

<희망을 주는 책 소개> 대한민국史

by 이시대 2013. 1. 6.



대한민국史(한홍구, 한겨레신문사, 2003) 

“진보적 역사 읽기는 반드시 필요하다.” 

내친 김에 역사책에 대한 이야기를 몇 번에 걸쳐 해볼 필요성을 느낀다. 술자리에서 가끔 정치 얘기가 나오면 평소엔 그렇게 싫다가도 자칫 이때는 상대방에게 기가 죽을 것 같아 너도 나도 목 높여 정치를 얘기한다. 말이 얘기 한다는 것이지 누구나 소리 높여 ‘비판’한다. 사실 비판을 유발하는 것이 정치문제 뿐이던가. 가족, 친구, 상사 등에게서 고루 감정상하고 술자리에서 푸는 것이 오히려 일반적일 것이다. 생각해보면 유독 정치 문제에 있어서 ‘대화와 타협’이라는 말이 많이 등장한다. 이를 뒤집어보면 대화가 잘 안 되고 싸움만 난다는 이야기려니 생각한다. 

그때, 그때의 논리가 정황상 타협점을 찾더라도 다시 보면 등 돌리기 일쑤여 보인다. 사실 그 뿌리 속에서 서로 다른 가치에 기반 해서 사실을 규정해 놓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가치의 기반을 튼튼히 해놓는 것이 어설픈 타협보다 훨씬 건강한 것이라 생각한다. 역사 서적을 보는 즐거움이 그런 데에 있다고 할까? 자기가 판단하고 규정하는 가치 기반이 풍성해지면 삶 자체가 조금은 ‘있어’ 보이지 않을까? 

앞으로도 여러 가지 역사책에 대한 조명을 시도하려고 하겠지만 역사책이 어렵다보니 먼저 대중이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책이 좋겠다. 그 중에서도 국방부가 불온도서로 지정해 훨씬 가치가 높아진 한홍구 교수의『대한민국史1~4』는 대중용 역사 읽기의 걸작이다. 내가 대중의 한사람이니까 쉽게 하는 소리지 전문가들 역시 주목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한홍구 교수를 생각하다보면 교수와 같은 이미지보다 투사의 느낌이 더 강렬하다. 행동하기 때문이다. 국정원과거사위원회 같은 곳에서 ‘군 의문사’ 문제를 집중 다뤘고, 여기저기의 대중강연 그리고 광화문에서 시민들과 함께 했던 모습들이 떠오른다. 괜히 불온서적에 올라가는 것이 아니다. 

사실 한홍구 교수의 이름을 먼저 접한 것은 대한민국史에서보다 1987년 발간된 스칼라피노, 이정식 교수가 공저한 『한국공산주의 운동사1~3』를 옮긴이로였다. 머랄까 굉장한 충격 속에서 본 이 책에 대해서도 나중에 다루겠지만 그 뒤 한겨레21에서 글을 연재하는 것을 보았고 그게 이『대한민국史』로 엮어져 나온 것이다. 



제목을 한번 달아보았다. 무엇을 기준으로 해서 읽어야 할까? 그것은 달리 표현할 길 없는 진보적 역사 읽기다. ‘우리는 무덤 위에 서있다.’, ‘반미감정 좀 가지면 어때?’, ‘병영국가 대한민국’ 등 확실한 관점을 가지고 서술하고 있다. 어설픈 중립과 객관의 허울을 던지고 편을 들 땐 확실하게 들어준다. 

역사‘이야기’인 만큼 학술적인 서술이 없다는 것이 최대 장점 아닐까? 한홍구 교수의 책을 읽고 나서 얻은 최대의 성과는 현재의 삶을 사는 우리가 어떤 관점을 갖아야 할까? 하는 물음표다. 일본 새로운역사교과서를만드는모임 같은 곳에서 발간한 후쇼샤의 일본 교과서를 그대로 베껴온 듯 한 교과서가 버젓이 나오고 있지 않은가. 친일근대화론에 대해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었다.” 등과 같은 논조들은 사상과 양심의 자유라는 명제 앞에서 인정받는데 한국사의 소수의 목소리, 억눌렸던 목소리에 대해서는 위와 같은 명제에서 차별 대우 받는 것 같다. 대체 누구에 의해서? 


근, 현대사를 초보적이나마 대강의 줄기를 이해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한 역사의 주인공들이 아직 대다수 생존해있고, 계속 영향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점 시점에서 단순논리의 합리성보다는 주장의 근간을 이루는 우리의 토대가 더욱 깊고 넓어져야 하는 것은 아닐까?『대한민국史』는 그에 대한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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