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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

<희망을 주는 책 소개> 한강

by 이시대 2013. 1. 8.

 

 

한강(조정래, 해냄, 2002)

“도도하게 흘러왔던 민족사의 회복”

3년쯤은 지난 일이다. 좋은 책을 구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청계천 헌 책방을 뒤지기 시작한 나는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는『한강』10권을 발견하고 무척이나 고심을 하고 있었다. 집에 태백산맥이 있는데 아직 그것도 읽지 못해 안절부절 못하고 있어서 지금 이 책을 사면 단순 장식용밖에 되지 않을 것 같았다. 발길을 거두려고 했는데 다른 손님이 한강을 이리저리 살펴보며 가격을 흥정하고 있었다. 그건 안 될 일이었다. 어차피 내 손에 들어오게 될 책 미리 사야 된다며 10권을 챙겨서 집으로 돌아왔다.

기분 좋은 날이다. 미뤄 두고 미뤄 왔던 조정래 작가의 대하소설을 드디어 다 읽어냈다. 아리랑-태백산맥-한강으로 이어지는 총 32권의 책들을 ‘읽어냈다’고 표현하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1학년 때 잡았던 태백산맥은 초장부터 그 언어의 깊음을 이해하지 못해 금방 접어두는 수밖에 없어 대학 졸업 전까지는 반드시 읽어 내리라 수차례 각오하고 있었다.

역시 독서라는 행위는 위대하다. 3편의 대하소설을 읽는 동안 어느 책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민중사’의 도도한 물줄기를 조금이나마 관찰할 수 있었던 것은 큰 행운이다. 그 동안의 근, 현대사 도서는 사건과 사물을 정리하는 데에 있어서 표피적인 접근만 가능할 뿐 도무지 입체적인 읽기를 하기가 어려웠다. 그것은 무엇보다 읽는 이, 즉 나의 식견이 부족했음이 가장 큰 원인이었겠지만 근, 현대사가 어렵고 복잡하다는 합리화 역시 있기 마련이었다. 한강의 10편을 마무리 하면서 그러한 식견이 부쩍 늘었음을 자만하기도 해본다.

20여년에 걸친 저자의 거대한 작업이었다. 살기위해 글을 쓰는 게 아니라 마치 글을 쓰기 위해 사는 사람처럼 생활했던 저자의 노력은 한 개인의 성과물로 끝난 것이 아니라 민족사를 각성시키고 옳은 미래로 가기 위한 초석을 놓는 일이었다. 글을 읽으며 농민수난사-민족해방운동-노동운동으로 정리되는 이 철저한 ‘비주류’의 흐름을 외면하며 말하는 한국 근, 현대사가 대체 어떤 소용이 있는 지 판단해본다.

한강의 특징은 군데 군데 실존인물을 그대로 등장시킴으로서 소설의 현장성을 높였다. 노동운동의 대표로 상징되던 전태일, 도시산업선교회 혹은 빈민운동을 대표하는 김진홍 목사 등을 통해 당시의 분위기를 전하는 대목에서 책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 정말 잘한다. 이 당시에는 이렇게 사는 것이 바람직한 일일거야, 연신 생각하면서도 이들의 한없는 고립감, 초라함에 다시 우울해지지 않을 수 없다.

아버지가 월북을 해서 평생 연좌제에 갇혀 지낸다는 유일민과 유일표의 삶을 통해 이데올로기의 질곡의 구체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일류대를 나오고도 생의 현장에서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는 삶, 사랑이라는 인류의 가장 위대한 가치마저 인위로 차단당하는 삶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가난 때문에 처절하게 살아야 했던 사람들의 삶은 사실 대다수의 우리 아버지, 어머니 아닐까 한다. 저 가장 밑바닥에서 몸부림쳤던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주류로서 해석되는 날은 과연 올 수 있을까.

대하소설을 한번 읽는 데는 제법 큰 체력이 소모되는 것 같다. 사실 태백산맥과 한강은 최근 한달에 걸쳐 다 읽게 된 것 인데 밥 먹고 자는데 빼고는 모두 책읽기에 쏟아 부었다.집에서는 대체 그 소설을 지금 읽는다고 해서 남는 게 무엇이냐, 밥이 되냐 쌀이 되냐 아우성이지만 20년에 걸쳐 완성한 이 작품들을 불과 그 시간에 읽어내고 또한 적지 않은 성과까지 얻어내니 역시 좋은 책을 읽는 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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