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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ical view48

[커버스토리] 조선은 친중, 결일, 결미해야 한다 ‘조선’이 국제사회에서 이름을 처음 드러낸 것은 불행하게도 중국과 일본, 러시아 그리고 역사적으로 아무런 관계가 없었던 미국에 의해서였다. 당시 전반적으로 ‘쇄국론’이 지배적이었던 조선사회에서 외부의 경제사회적 ‘침투’는 전통지배계층에게 매우 위협적 요인이었다. 미국에게 조선은 대 아시아 무역팽창의 기지로 인식되었고, 러시아의 남진을 효과적으로 저지해야 한다는 것이 미국의 전략적 판단이었다. 이러한 판단은 함포를 동원한 강제개항으로 연결되었으나 실패하고야 말았다. 미국은 이내 함포외교를 중단하고 청을 끌어들여 조선을 개항시키려 시도하기 시작했다. 때마침 청의 이홍장 역시 러시아의 남하가 미치고 올 파급을 우려해 미국을 한반도 내로 끌어오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또한 조선 사회 내에서도 새로운 흐름이 감지되.. 2013. 3. 20.
[커버스토리] 중국을 개, 돼지처럼 취급하느냐! 중국을 개, 돼지처럼 취급하느냐! 1915년 1월 18일 주중국 일본공사는 야심한 시각 위안스카이 대총통을 찾았다. 만약의 순간에 대비해서 만반의 준비를 갖춘 상태였다. 위안스카이 앞에서 그는 표정 한번 흔들림 없이 전함과 기관총 모양이 새겨진 문서 하나를 건넸다. 문건을 본 위안스카이의 눈에서 미묘한 떨림이 생겼다. “감히 네놈들이…….” 그러나 대놓고 저항할 수조차 없는 상황에서 위안스카이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얼마 전 칭다오와 자오저우만을 큰 저항 한번 못해보고 빼앗긴 위안스카이에게 눈앞의 남자는 결코 가벼이 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눈앞에 놓인 문서에는 일본이 중국에 요구하는 ‘21개조 요구’가 담겨 있었다. 러일전쟁으로 획득한 여순, 대련항을 앞으로 99년간 일본에 양도할 것을 요구하는 문서였.. 2013. 3. 20.
<커버스토리> 우리 한번 만납시다! 1971년 8월 12일 최두선 대한적십자사 총재가 ‘남북이산가족찾기’를 제안하고 북한이 이를 수용함으로서 남북관계의 새로운 전기가 열렸다. 당시 미국과 중국의 핑퐁외교로 발생한 한반도 데당트 분위기는 이산가족찾기 행사로 더욱 훈풍이 불고 있었다. 바로 그 시간, 언론에 공개되지도 않은 비밀만남이 이뤄지고 있었다. 남북관계의 특수성과 첩보작전을 방불케 하는 치밀한 사전 각본에도 불구하고 비밀 만남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 남한의 대한적십자사 과장 정홍진은 내심 불안해 하고 있었다. 이내 11차례나 비밀 접촉이 있고난 3월 28일 정홍진은 이후락을 북한으로 보내는 데에 극적 합의를 보았다. 이후락이 올라간다는 것은 박정희 정권의 의중을 정확히 전달할 수 있는 동시에 미-중 간의 정보망을 벗어나 독자적인 한.. 2013. 1. 7.
[커버스토리] 나에게 단 하나의 문장만 주면 누구든지 감옥에 보낼 수 있다 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이제 막 독일문학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조국을 위해 일하겠다는 민족주의적 열정을 가진 사회주의자였다. 1922년 6월 어느 조용한 사무실에서 면접을 마친 그는 단 11년만에 정부의 내각선전상에 임명된다. "나에게 단 하나의 문장만 주면 누구든지 감옥에 보낼 수 있다"고 호언하던 그는 그 시대의 총아인 라디오를 이용해 전 국민들에게 왜 그의 동지가 통치를 해야 하고, 국민들이 왜 당원이 되야 하는지 엄청난 호소력을 보이며, 전 국민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러나 그가 사용한 언어는 왜곡과 과장을 일삼았고, 말이 전쟁을 이길 수 있는 결정적 수단은 되지 못했다. 1945년 5월 1일 수도 베를린이 포위된 가운데 탈출할 가능성이 없는 그는 아내와 자녀 6명을 죽이고, 사회주의자보다 전체.. 2013. 1. 2.
[커버스토리] 최후의 2인 1945년 4월 25일 한 남녀가 조심스레 밀라노를 탈출했다. 그들은 매우 조심스럽고 치밀하게 이동했지만 목적지인 스위스땅을 밟지도 못하고 야산대 파르티잔에게 이틀만에 이탈리아 북부에서 체포된다. "살려만 주면 제국을 주겠다" 던 남자. 그러나 약식재판을 받고 그는 총살형에 처해졌고, 시체는 28일 밀라노 한복판에 공개됐다. 비슷한 시기 독일의 지하벙커에서 한 남자가 권총을 입에 넣어 자살을 택했다. 이 두사람의 죽음으로 비로서 세계 제2차대전이 연합국의 승리로 확인되는 순간이며 일반적으로 알려진 독재자의 최후를 확인할 수 있다. 한 시대를 엄청나게 풍미했던 두 남자, 무솔리니와 히틀러의 죽음은 그처럼 초라했다. 2013. 1. 2.
<커버스토리>게르니카 이야기 1937/4/26 독일공군 '콘돌군단'의 무차별 폭격으로 스페인의 작은도시 게르니카에 재앙이 내렸다. 스페인 북부 바스크 족에는 성지나 다름없던 게르니카가 참극을 당한것은 스페인 내전 때 프랑코에 반대하고 공화파의 손을 들어줬다가 프랑코를 지지하는 독일군에 의해 학살당한 것이다. 주민 7000명중 1600명이 사망한 이날은 장날이 열리는 중앙광장이었고 도망가는 부녀자와 노인들에게 기총사격이 이어졌다. 조그맣고 평화를 사랑하는 소도시에 불어닥친 참극은 곧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스페인을 떠나 파리에 머무르던 피카소는 이 소식을 듣자 주체할 수 없는 분노에 떨었고 슬픔으로 그린 작품이 이 게르니카다. 미국에 소장되어 있던 이 작품은 스페인에 민주주의가 찾아왔을 때 돌려주라는 피카소의 유언에 따라 1981년 .. 2012. 12.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