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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

<처절하게 독서하기> 이병주의 『지리산』, 빨치산의 처절한 역사

by 이시대 2013. 3. 25.

        <처절하게 독서하기> 이병주의 『지리산』, 빨치산의 처절한 역사

 


이병주, 智異山, 1986년, 기린원

독서는 늘 유쾌하고, 실용적인 정보만을 전달해주는 것이 아니다. 가끔가다 독서한다는 행위는 늪에 빠진 기분이 들거나, 새끼줄 위를 걷는 긴장감을 겪어야 할 때도 있다. 가치가 개입되지 않은 정보는 그런 기분이 들 까닭이 없다. 평지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적어도 인식의 굴곡을 제공하는 책들은 그만큼 귀중 할 수도 있고, 아니면 스스로를 나락에 떨어지게 할 수도 있다. 독자의 굴곡을 감당할 수 있는 독서력이 그만큼 중요한 것이다.


읽어서 아프다는 느낌이 나는 책은 어떤 종류의 책일까?


어릴적엔 작가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버X』 라던가 『가시XX』와 같은 센티멘털한 작품을 보면서 눈물을 흘린다던가, 아니면 그 가족의 비극에 못내 감정이 동요하기도 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그러한 감정들이 아주 잘 기획된 ‘상품’에 의해 반응한다고 생각하니(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나의 감정이 싸구려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독서를 하고나서 그 감정은 금방 식게 마련이니 곧이어 그런 ‘남지 않는 장사’는 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던 어느날 조정래의 ‘태백산맥’을 읽게 되었다.


무슨 책이 이런가, 태백산맥은 독서에 있어서의 고통을 안겨주었다. 괜히 금서에 올라 ‘베스트셀러’가 된 게 아니었다. 그 고통이란 것은 개인 개인의 사연에 담겨져 있는 분절된 형태의 고통이 아니라 민족사가 안고 있던 모순의 덩어리를 발견하는 고통으로서, 적어도 태어나서 처음 겪는 고통이었다. 획일화된 역사전달 통로를 벗어나 스스로 역사를 인식하고자 하는 순간은 그렇게 찾아온 것 같았다.


그 뒤 이태의 『남부군』, 권운상의 『녹슬은 해방구』, 백선엽의 『군과 나』등 빨치산 과 관련한 책들을 읽으며 때로는 그 감각을 심화시키기도 하고, 때로는 무게감을 줄이기도 하면서 지리산의 역사를 살펴보았다. 혁명과 배반, 삶과 죽음, 이념과 현장에 관한 도무지 현 사회의 흐름과 맞지 않는 책들을 보며 거둔 수확은 단 하나. ‘자신의 존재를 규명하고자 치열하게 고민해왔던 사람들의 삶’ 을 본 것이다. 이념은 그 존재를 규정하는 척도로서 작용해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이념의 성격이다. 빨치산의 면면이 전부 6.25 전쟁 시 남반부에 혁명 정세를 기약하고자 입산(入山)한 것이라면 빨치산을 이해하는 틀도 단일할 것이다. 그러나 이병주의 지리산은 그러한 단일한 틀을 제공하지 않는다. 『태백산맥』이 해방 전 “무상몰수 무상분배”를 요구하는 소시민들의 입산을 표현하고, 『녹슬은 해방구』가 혁명전위(주류)의 이동과정을 세밀하게 표현했다면 지금 말하게 될 이병주의 『지리산』은 구빨치에서 신빨치로 넘어갔던 박태영의 삶을 제시함으로서 또 다른 삶, 즉 일제의 용병으로 개죽음을 맞지 않기 위해 학병을 피하고 항일(抗日)을 위해 입산한 한 학생이 조선의 진정한 독립을 위하는 마음으로 ‘나름의 과학적 정세 분석’을 통하여 공산주의를 신념화하게 되는 내용을 그리고 있다.


 

조선 학생 중에서도 가장 박식했던 박태영은 학창시절부터 투철한 항일의식으로 인해 존경을 한 몸에 받는 그런 인물이었다. 당시 조선인 사회주의자들의 상당수가 일본에 유학한 엘리트 그룹이었듯 박태영 역시 일본땅에서도 사상 서클과의 조우를 통해 그 인식을 심화시켜나가게 되고, 지하에 숨어있던 일본인 혁명가 무나카와를 통해 학습을 받게 된다. 이를 통해 소위 ‘과학적 세계관’이 형성되었으며 박태영은 조선의 혁명을 결심하게 된다. 때마침 일제의 최후의 발악인 총동원령이 떨어지자 학병을 피할 수 없게 된 그는 한국에서의 항일혁명의 근거지를 찾아 지리산으로 향하게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또 한명의 중요한 지식인이 등장하는데 박태영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세계관을 갖고 있지만 박태영을 위해서라면 물심양면 도와주는 하영근의 존재다. 하영근은 공산주의가 이념과 조직 자체의 내적 모순으로 인하여 붕괴될 것이라며 박태영에게 공산주의를 버릴 것을 누차 이야기 한다. 사상적 흐름이 한쪽으로 매몰되는 것을 방지하려는 작가의 장치이기도 하다고 본다.


박태영류의 지식인으로서의 내적 신념화 과정과는 별도로 해방 후 정세는 어떻게 전개되었는가. 남한에 단정이 수립되고, 조선공산당은 ‘정판사위조사건’을 전후로 완전히 불법화, 지하화하기에 이른다. 그전과는 차원이 다른 정세의 전개 앞에서도 혁명에 대한 기대감을 버릴 수 없었던 박태영은 해방 후 다시 만난 가족을 뒤로한 채, 또 다시 입산을 결심하게 된다. 물론 이러한 결심에는 함께 구빨치로서 항일운동을 하던 하준규의 조직선, 남부군 사령관이 된 이현상의 조직선이 복잡하게 얽혀 정세판단에 앞서 실천을 요구했던 조선공산당의 조직논리가 결부되어 있었다. “어느 선택이 조국과 자신에게 이로운 것인가, 조선공산당과 인민을 위해서는 복무하지만 당과 박헌영을 동일시 할 수 있는가, 김일성 우상화 운동을 정말 과학적 사회주의로 인식할 수 있는가, 남반부의 혁명 열기는 과연 미군정을 타도하고 인민공화국을 수립할 수 있는 조건을 형성했는가.” 같은 문제에 있어 답을 내리지 못하고 총을 들었기에 박태영은 늘 번민했다.


당의 무오류에 대한 믿음! 빨치산만이 남반부를 혁명화 할 수 있다는 신념! 그 신념이 채내화 하기도 전 어느덧 하나, 둘 스러져가는 동지의 모습들로 신념은 어느덧 희석되고, 결국은 북측과의 지도선이 끊기고 고립되어 산돼지처럼 지리산을 헤메다가 내린 결론은 ‘허망의 정열’ 이었다. 이제 남은 것은 파괴되는 자아(自我)인 것인가. 아니면 자기선택에 대한 책임인가. 결국 박태영은 자신이 이끌던 부대원 8명을 귀순시키고, 귀순하면 과거를 분문에 붙이겠다는 과거 중학동창의 권유를 뿌리치고, 지리산에 남아 경찰의 손에 죽음을 맞이했다.


결국은 하영근과 같은 지식인의 판단이 적중하는 메커니즘을 보이는 이 세련된 ‘반공소설’은 그러나 지식인 특유의 내적 고뇌와 갈등을 묘사함으로서, 다른 빨치산 소설과는 또 다른 묘미를 느끼게 해준다. 게다가 직접 지리산에 있지는 않았더라도 그 시대의 정서를 어느 정도 표현할 수 있는 위치의 작가는 이제 없기 때문에 소설 『지리산』은 오히려 현 시대에 더욱 그 가치가 소중해질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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