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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환의 view85

통합진보정당 결성 실패를 보며 노트 3.0 2011/09/05 17:33 이시대 통합진보정당 결성 실패를 보며. 지난 몇 개월 동안의 치열한 논의 끝에 결국 어제 통합 진보정당 건설이 부결되었다. 진보정당 어느 한축에도 들지 못했던 내가 이런 언급을 하는 것이 적절한 것인가에 대해 걱정이 들기도 하지만 사회양극화를 해결하고 복지국가를 완성하는데 크게 기여할 진보진영의 이번 통합 논의가 불발된 것은 무척이나 아쉽다. 진보진영의 통합논의는 다른 진영의 통합논리와는 무게감이 다르다. 혹자는 진보진영의 통합논의가 지지부진하고 감동을 주지 못하느니 하며 논의를 평가절하하고, 미치는 파급력을 축소시키려하지만 분화된 진보정당의 운동력만으로도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민생문제를 제 1선에 올려놓는 것을 견인하고, 시민운동단체의 내용결집을 이끌어낸 것 만.. 2019. 1. 27.
조봉암 간첩사건 무죄 판결을 환영한다 발표, 선언, 토론문 2011/01/21 00:21 이시대 조봉암 간첩사건 무죄 판결을 환영한다 2019. 1. 24.
역사답사 ‘임시정부 유적지를 따라, 김산 아리랑의 행적을 찾아서’ 를 다녀와서 김동환의 view 2011/02/09 10:25 이시대 지난 1월 4일에서 14일까지 아세아역사문화연구소와 흥사단 교육운동본부가 주최하는 ‘임시정부 유적지를 따라, 김산 아리랑의 행적을 찾아서’를 다녀왔다. 지난 8월에도 참가의 기회가 있었지만 너무나 아쉽게도 참여를 하지 못한 터라 이번 행사는 반드시 가야겠다는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 각오라는 것은 구체적으로 중국 관내의 민족해방운동의 구체성을 확인하고, 운동가로서 관념적인 사고를 탈피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흥사단 운동의 현장에서, 혹은 필자가 개인적으로 경험한 학생회 운동의 현장에서는 늘 과거 역사에 대한 치열한 토론이 이루어졌다. 1970~80년대의 민주화운동의 성격에 관하여, 그 이전의 이승만 정권과 4.19 혁명, 더욱 과거로 가서는 식민지 시.. 2019. 1. 24.
흥사단 전국청년위원회 성장을 위한 제언 흥사단 전국청년위원회 성장을 위한 제언. 들어가며. “위기다” 라는 말은 필자가 흥사단 활동은 시작한 2003년부터 반복되어 왔다. 물론 그 이전부터 메아리치는 메시지였을 것이다. 본부로부터 제츨받은 자료에 따르면 전국의 대학아카데미의 개수는 12개로서 2003년의 24개에 비해 딱 절반수준 가량으로 떨어졌으니 위기는 주관적 감정이 아니라 객관적 형태로 나타난 셈이다. 또한 전국 청년단우의(20세~45세) 총 인원은 1600여명으로 전체 1만 단우의 16%를 이루고 있으니 조직의 하부가 그렇게 튼튼하지 못함도 확인되었다. 고교A, 대학A를 통해 의식적으로 훈련받은 청년세대를 배출하고 이를 단우화시키는 구조 속에서 가장 중요한 고리인 대학A의 침체는 자연스레 흥사단 전반의 활기를 저하시킨다는 측면에서 확실.. 2015. 5. 25.
흥사단 전국청년위원회 창립 인사말 존경하는 선, 후배 동지 여러분! 흥사단의 미래를 책임져보겠다고 각오한 청년 단우들이 몇개월의 노력을 거쳐 창립 102주년 기념식을 맞이한 오늘, 흥사단 전국청년위원회 창립을 거행하게 되었습니다. 여기 모여주신 선 후배 동지 여러분, 단의 심장이 되겠다 자처한 이 청년들에게 참 고생했다 큰 박수 한 번 주시기 바랍니다. 32세의 청년 도산 안창호는 일제의 수배망이 펼쳐지자 그 유명한 거국가를 남기며 이곳 한반도를 떠나야 했습니다. 이토 히로부미로부터 국가를 운영해달라는 회유를 받을만큼 매력적이었던 도산은 그러나 타협을 단호히 거부했습니다. 그리고 전세계에 독립운동기지를 구축하고자 노력한 끝에 상해임시정부 탄생의 산파를 맡아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세웠으며 독립운동 진영이 단결하지 못하고 분열할 때, 유일당운.. 2015. 5. 25.
정여립과 독서인 -정여립과 독서인- 선조 22년 10월 2일 황해감사 한준의 비밀 장계가 선조 앞에 올라왔다. 정여립의 역모사실을 고변하는 장계로서 호남정치인들의 맥이 씨가 마르게 되는 의 시작이었다. 그날 밤, 선조가 참석한 가운데 3정승, 6승지, 의금부당상 등을 포함한 중신회의가 열렸다. 3정승은 모두 ‘동인’이었다. 정여립이 율곡 이이를 통해 정치권에 입문한 ‘서인’ 정치인이었지만 이이의 말년엔 이이를 비판하고, 동인으로 돌아선 까닭에 3정승으로서는 그의 역모가 믿기힘들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정여립은 어떤 사람인가” 선조의 물음에 우의정 정언신만 대답했다. “그가 독서인임을 알뿐” 역모를 하기엔 가당치 않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사건은 자꾸 확대되어 나갔다. 실체적 규명을 파악하는 그 ‘느릿함’에 비해 안악.. 2015. 4.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