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김동환의 view85

김규식과 조선민족혁명당 -김규식과 조선민족혁명당- 이름: 김규식 생년월일: 1881년 1월 29일 직업: 교육가, 고등교육 수료 구사 외국어: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러시아어, 중국어, 일본어 소속단체: 고려당 후보(고려공산당 이르쿠츠크파 후보당원)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자 영문학을 전공한 김규식 박사(이하 김규식, 모든 인물 존칭 생략)는 1922년 1월 21일부터 2월 2일까지 코민테른 집행위원회가 주최한 극동민족대회에 참석 차 모스크바에 머무르며 위와같은 프로필을 작성해 제출했다. 이 길은 결코 간단히 온 길이 아니었다. 기록이 뒷바침 되는 것은 아니지만, 1919년 1차 세계대전 전후 처리를 논의할 것으로 예정된 파리강회의에 대표단으로 파견될만큼 유창한 영어실력의 소유자이자 미국통이었던 그가 향후 냉전의 한축을 이룰 .. 2015. 4. 16.
유성룡, 두문불출하다 징비록이 유행인 듯 하다. 지난번 정도전도 그랬고, 사실 보지 못해 안타까울 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조선은 왜란 이후 철저히 망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공리공론을 일삼으면서도 사대부의 계급적 이익을 확실히 보장했던 조선 사회가 막상 전쟁이 발발하자 전쟁의 총사령관이 누구보다 빨리 나라를 버리는 꼴을 두 눈으로 목도했어야 했으니 그럴만하다. 아니면 다들 이래저래 도망갔다 하더라도 전후만큼은 철저한 쇄신으로 사회 변화를 추구했어야 했지만, '구관이 명관'인양 전전체제가 빠르게 회복되면서 쇄신의 동력이 상실되어 갔다. 이런 역사를 살펴보고 있자니, 역사는 늘 정의가 승리하는 것도 아니며, 기회주의적인 처신만이 개인의 영달을 확보할 수 있다는 회의적 결론에 다다르기 십상이다. 차라리 책을 덮는게 낫겠지 싶기도 .. 2015. 4. 16.
김재봉과 3.1 운동 -김재봉과 3.1운동- 나라를 잃었을 때의 슬픔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누구에게나 커다란 충격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충격을 딛고 한 발 내딛기 위해서는 더욱 많은 과정을 필요로 한다. 외교와 치안을 장악당한 한반도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그 전처럼 소시민적 개인으로 남아있으려면 사실 별로 할 것도 없다. 그러나 아픔을 개인적 차원으로만 환원시키는 것이 아니라 위기의 중심을 공동체로 놓고 구체적 행동을 보이는 순간, 인간은 위대해진다. 강제병탄 이후, 이에 저항하기 위한 흐름은 다양한 갈래로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열분에 찬 명망가들은 국내 저항을 포기하고, 해외로 망명을 한다던가, 의병대나 해산당한 군인들은 전선을 만주 이북으로 후퇴하여 '산사람'이 되는 것이 당시로서는 합리적인 판단이었을 것이다.. 2015. 3. 2.
흥선대원군의 삶과 정치 -흥선대원군의 삶과 처세- 정조 사후 드러내놓고 정조의 통치에 반대하던 노론 벽파가 순조를 위시하여 정권을 장악했던 시기, 말이 전제주의 국가지 왕권은 무너지고 60년 안동김씨의 세도정치가 싹트고 있었다.(이 대목을 생각해보면 2년 전의 박근혜와 십상시 파동을 겪은 지금의 박근혜가 과연 같을까 싶다. Jp가 박근혜를 향해 '외로운 자리'라고 했을 때 아마 속으로 눈물이 콸콸 흘렀을 것이다.) 세도정치가 강해지고 왕권이 무너지면서 안그래도 짜증났던 왕족들의 삶은 더욱 피폐해졌다. 과거 태종이나 세조처럼 로맨틱한 혁명적 야망을 꿈꿀 수도 없었을 것이다. 이빨을 보이면 어떻게 되는지 너무도 쉽게 추측되었을 터다. 이런 분위기가 순조-헌종-철종까지 이어지면서 흥선대원군이 할 수 있었던 일은 너무나도 뻔한 것이었.. 2015. 3. 2.
비운의 민족주의자 최능진 -비운의 민족주의자 최능진- 여기 최능진이란 인물을 한번 살펴보자. 가끔은 서로 대립되는 두 인물을 동시에 조명하면 그 시대에 대한 사회상을 획득할 수 있기도 하다. 최능진은 1899년 평남에서 태어나 37년부터 평안도 운동계의 거두 도산 안창호와 함께 국내에서 독립운동을 시작했으며, 조직사건으로 2년의 옥고를 치룬 후 해방 직후 조만식과 함께 평남 건국준비위위원회에서 치안부장으로 활동하다 소련의 탄압을 피해 월남한 후 미군정 경찰관료로 취직한 보기 드문 이력의 소유자다. 건준-월남-미군정 하 경찰관료는 상당히 이해하기 어려운 조합이지만 추측건데 안창호와 조병옥의 관계 혹은 조병옥과 조만식의 관계망 속에서 최능진이 위치했던 것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해본다. 안창호, 조만식, 조병옥의 관계망 속에 있었다는 .. 2015. 3. 2.
문재인 대표의 현충원 참배 온라인 상에 잠깐 문재인 대표의 이승만, 박정희 참배에 대해 '관대한' 의견을 표시했지만, 그 이유를 좀 더 서술해보고자 한다. 나는 이승만이 한국의 민족해방운동사상(독립운동사상) 그다지 기여한 바 없으며, 오히려 해방 이후 친일파가 득세한 데 대해 가장 큰 책임이 있다는 이유로 '건국의 아버지' 와 같은 쓸데없는 칭송은 하루 빨리 사라져야 한다고 믿는 편이다. 비록 한일강제병합 이전 독립협회를 통해 왕정을 타도하고 민주공화제 도입 같은, 당시로서는 인류발전사적인 변혁운동을 시도 하기도 했지만 나라가 망한 이후의 행보를 보면 한심할 정도라고 생각한다. 전가의 무기로 홍보되는 '외교독립론' 역시 파리강화회의 실패 이후에는 결과적으로 해방운동사상에 있어 그다지 유효한 노선도 아니었지만 오히려 독립청원으로 인.. 2015. 3.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