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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ical view48

김일성의 귀국과 조선공작단 김일성의 귀국과 조선공작단 1937년 6월 4일, 압록강 변 작은 시골도시를 습격한 김일성과 동북항일연군의 90여명의 대원들은 압록강을 건너 대안으로 이동해 밀림에 잠복하고 있었다. 이들은 곧장 대원을 습격대, 진공대, 방위대 등의 6개 대오로 나눠 시골의 주재소를 습격하루예정이었다. 그리고 습격대는 주재소의 총기고에서 무기습득에는 성공하나 5명의 경관은 도주하는 바람에 군사작전으로서는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는데, 이것이 유명한 '보천보 전투'다. 90명이나 되는 부대가 국경에 침입해 일본 주재소를 습격했다는 사실에 일제도 경악했지만, 그것보다 허술한 수비로 인해 조선인 '김일성'에게 영웅신화를 안겨주는 여론 공작에 이용 당했다는 점이 더 분했을 수도 있겠다. (물론 이것은 훗날의 결과다) 이것이 여론.. 2019. 1. 29.
조선의열단원들의 생활 조선의열단원들의 생활김동환의 view 2014/11/30 00:37 김동환 1960년 이승만 정권 말기, 소모적이라 여겼던 7년 간의 군생활을 마치고 뒤늦게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를 고민하던 30세의 리영희는 도쿄의 한 서점에서 눈에 확 들어오는 책을 한권 발견했다. 부제가 '한 조선인 혁명가의 생애'로 적힌 이 책의 제목은 로서, '님 웨일즈'라는 미국인 여성 기자가 '혁명과 반동'의 요동 속에 놓여있던 중국 연안에서 한 조선인을 담아낸 기록이다. 그 조선인의 이름은 '김산(장지락)'이었고, 리영희는 를 통해 중국혁명을 위해 복무하고 있던 김산의 삶을 보면서, 그와 비슷한 처지에 있던 수 많은 조선인 혁명가들의 삶에 심취했고 상당히 긴 시간을 중국혁명에 대해 연구하는 계기가 되.. 2019. 1. 29.
그래! 김육이다! 그래! 김육이다!김동환의 view 2014/12/05 00:28 김동환 약초 캐러 구름 뚫고 산 올라갔고 낚시한 뒤 달빛 안고 돌아왔었지. 나무하는 늙은이나 농사꾼들과 세월이 오래됨에 사귐 깊었고 가을 서리 내리면 추수 서둘고 봄비가 내릴 적엔 밭을 갈았지. 기묘사화에 연루된 집안의 내력으로 인해 명문가의 자손임에도 불구하고, 밑바닥 생활을 해야했던 김육은 잠곡으로 내려가 일반 서민의 생활을 '동지적' 입장에서 경험할 수 있었다. 그의 호가 잠곡이듯 잠곡에서의 생활은 김육의 정치를 결정하는데 매우 큰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대충 짓고 대충 갖춘 초가집에서 산에서 나무하여 숯을 굽고, 그것을 서울에 내다 팔아 생활했다. 잠곡에서 그는 진실되게 평민이었다. 공리공론과 관념의 영역에 있는 민생이 아닌 눈 앞에.. 2019. 1. 29.
홍국영과 소년 출세 홍국영과 소년 출세김동환의 view 2015/01/07 00:36 김동환 홍국영과 소년출세 뒤주에 8일이나 갖혔던 사도세자의 죽음은 그 방식에 있어 매우 경악할 만 했다. 영조가 취했던 이런식의 상황 설정은 신하들에게 있어 죽음을 둘러싼 해석과 이후의 행보를 결정하는데에 있어, 그 온도차이를 매우 심하게 벌려놓았다. 사도세자의 아들 정조가 즉위 일성으로 아버지의 신원을 엄포했을때, 이미 택군현상이 발생한 조선 정계에서 정조를 바라보는 시각이 극단을 달렸을 것이란 추측은 쉽게 가능하다. 하지만 정조는 비교적 집권 초반의 권력누수를 효과적으로 차단했는데, 이는 그의 비서실장 아니 특무실장 '홍국영'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정조 역시 이전의 강력한 군주의 권력운용 방식대로 왕권의 강화를 위해서는 외척의 발호를 .. 2019. 1. 29.
사도세자의 고백 사도세자의 고백김동환의 view 2015/02/05 00:01 김동환 정치와 권력은 진짜 비수와 같이 무서운 것 같다. 십상시들이 강력하게 실무를 장악한 것으로 추측되는 청와대가 '비선농단'이 단순 해프닝이었음을 대통령의 입으로 나오게 한 것과 문고리 권력 3인방을 홍수처럼 쏟아지는 비판의 여론 속에서도 끝까지 지켜내 '그룹을 보위' 하는 것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통합진보당 같은 '외부의' 거센 공격 '따위' 보다 비선농단이 훨씬 내상이 크다는 것을 고려하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고, 그 파동의 수위가 높을 수록 진짜 누군가를 죽음까지 이르게 할 수 있음을 보기도 했다. 사도세자의 삶을 본다. 아버지 영조가 택군으로 왕위에 오른만큼 노론 정파의 일방적 우위 속에서 소론에 경도해버린 사도세자의 정치적 .. 2019. 1. 29.
비운의 민족주의자 최능진 비운의 민족주의자 최능진김동환의 view 2015/02/23 00:29 김동환 -비운의 민족주의자 최능진- 여기 최능진이란 인물을 한번 살펴보자. 가끔은 서로 대립되는 두 인물을 동시에 조명하면 그 시대에 대한 사회상을 획득할 수 있기도 하다. 최능진은 1899년 평남에서 태어나 37년부터 평안도 운동계의 거두 도산 안창호와 함께 국내에서 독립운동을 시작했으며, 조직사건으로 2년의 옥고를 치룬 후 해방 직후 조만식과 함께 평남 건국준비위위원회에서 치안부장으로 활동하다 소련의 탄압을 피해 월남한 후 미군정 경찰관료로 취직한 보기 드문 이력의 소유자다. 건준-월남-미군정 하 경찰관료는 상당히 이해하기 어려운 조합이지만 추측건데 안창호와 조병옥의 관계 혹은 조병옥과 조만식의 관계망 속에서 최능진이 위치했던 것.. 2019. 1. 29.